[김필남의 영화세상] 변용이 가져온 두 편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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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레오 카락스 감독의 영화 ‘아네트’. BIFF 제공

코로나 시대 이후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디즈니 플러스 등에서 경쟁적으로 콘텐츠를 구매하거나 개발·기획하면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이 과열되는 양상이다. 이는 대중들의 눈을 사로잡는 재미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기에 긍정적인 신호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아선 구독료가 인상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과잉된 경쟁을 불러 오지 않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넷플릭스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요금을 인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가?

OTT 확대에 편리해진 영화 감상
최근 본 ‘아네트’와 ‘그린 나이트’
과거 예술 차용 아이디어 매력적
새로움의 의미 뭘까 고민하게 돼



몇 년 전부터 여러 개의 OTT를 구독하고 있지만, 영화는 스크린에서 볼 때와 TV모니터로 보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기대하는 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보려는 편이다. 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는 하루 1회, 1~2주 정도로 아주 짧게 상영하고 사라지니 그 시간을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 왓챠에 접속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기다렸지만 보지 못했던 영화들, 극장에서 빠르게 사라졌던 영화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영화를 볼 수 있구나 싶어 반가우면서도 묘한 기분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아네트’와 ‘그린 나이트’를 단숨에 보았다. 극장에서 봐야지 하다가 시기를 놓쳐버린 영화들이었는데,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고민한 수작들이라 놀라웠다. 사실 OTT를 통해 개봉한 ‘오징어 게임’의 성공 이후 강렬한 서사와 눈길을 사로잡는 이미지들에 매료되었는데, 두 편의 영화는 ‘오징어 게임’과는 또 다른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 내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아네트’와 ‘그린 나이트’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영화지만, 전통적으로는 유럽의 예술적 전통 안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레오 카락스 감독의 ‘아네트’는 기이하고 몽환적인 느낌의 뮤지컬 영화이며,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는 중세시대 영국에서 예수 다음으로 유명했던 인물 아서왕의 조카이자, 원탁의 기사에서 가장 강하고 충직했던 기사로 회자되는 가웨인 경의 이야기를 다룬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의 전설에 연원을 둔 영화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영화는 각각 뮤지컬과 고전문학의 예술적 재미를 어떻게 현대적인 영화로 ‘변용’해 다뤄볼까 고민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즉 두 편의 영화는 새로운 시도처럼 보이지만, 뮤지컬과 문학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결과의 산물이기도 하다. 두 영화가 과거의 예술을 변용한 아이디어는 너무나 창의적이고 매력적이다. ‘아네트’의 경우 오페라 가수와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결혼으로 태어난 아이를 목각인형으로 형상화시키는 독특함과 무대극의 차용을, ‘그린 나이트’에서는 과거의 신화적 세계관을 놓치지 않는 판타지적 요소와 함께, 중세 왕과 기사들이 가진 권위의 허무함을 비겁함과 죽음이라는 이미지로 상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새로운 콘텐츠가 기획되고 있으며, 영화보기도 극장에서 OTT로 옮겨가듯,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때 ‘아네트’와 ‘그린 나이트’는 새로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두 편의 영화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의 변용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사실 ‘오징어 게임’도 원래 알고 있던 그 ‘놀이’에서 시작하는 콘텐츠인 것처럼 변용은 창의성의 또 다른 말일 수 있다. 과거를 비추어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익숙함과 동시에 새로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창의성과 실험정신은 필요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면 인기에 영합한 플랫폼이 되거나 공감에는 실패할지도 모를 일이다. 즉 창의성을 매체의 효율성에만 맞추지 않는다면, 다양한 영화를 어디서든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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