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지속가능성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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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기업, 지방자치단체 할 것 없이 각 대표들의 올해 신년사는 대부분 ‘지속가능성’을 화두로 삼고 있다. 금융계는 지속 성장 가능한 금융을 만들자고 하고, 기업은 지속가능한 경영을 이야기한다. 지자체장들은 지속가능한 도시 또는 농촌을 앞세우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한 경영, 지속가능한 지구를 비롯해 지속가능한 소비, 지속가능한 투자, 지속가능한 개발, 심지어는 지속가능한 다이어트, 지속가능한 경마 등 가능한 모든 단어 앞에 ‘지속가능한’을 붙이고 있다. ‘지속가능한’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처음의 신선하고 산뜻했던 어감과는 달리 ‘지속가능한’이 수식하는 것들이 불온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기 시작했다.

차별·고통 없는 세상 위한 실천 과제
당연하다 느끼고 누리는 게 곧 오만
제도적 선언 넘어 성찰까지 동반해야

‘지속가능성’이 처음 공식화돼 등장한 건 1987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CED)가 발표한 (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에서다. 여기서 환경, 경제, 사회적 연속성과 관련된 체계적 개념으로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요구한 것이다. 이후 1990년대 들어 조금씩 거론된 지속가능성은 2015년 유엔이 17개의 지속가능 발전 목표를 발표한 이후 구체적 실천 과제로 제시됐다.

빈곤 종식, 굶주림 종결, 건강과 균형 잡힌 삶, 양질의 교육, 성 평등, 깨끗한 물과 위생,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 양질의 일과 경제 성장, 산업·혁신·공공시설, 불평등 감소, 지속가능한 도심 및 사회, 책임 있는 소비와 생산, 기후 조치, 수중 생물, 육상 생물, 평화·정의·강력한 제도, 목표 달성을 위한 협업 등이 그것이다. 환경뿐만 아니라 성별, 지역, 인종, 국가에 대한 차별과 고통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실천 과제로 볼 수 있다.

건축에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피해 갈 수 없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도 2010년대부터는 예술성, 파격성이 아니라 빈곤, 환경, 공공 등에 초점을 맞춘 건축으로 눈을 돌렸다. 프리츠커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생태건축, 녹색건축, 공공건축은 이미 시대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다.

얼마 전 이 한국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후위기가 인간 탓이고 그 근본 원인이 자본주의라는 것에 응답자의 61%가 동의했다. 무분별한 개발이 기후위기를 가져왔으며 기술 발달과 노동 착취가 불평등이라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심화시켰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환기는 지난 시간에 대한 성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성찰은 반성하고 깊이 되돌아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지속가능은 제도적 선언이 아니라 성찰을 동반한 실천적 과제이다.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지속가능한’을 보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성찰은 빼고 표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세상에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없다. 당연하다고 느끼고 누리는 것이 곧 오만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머잖아 ‘지속가능한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지 모른다. 아니, 고민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미래 기술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세계 최대 전자IT전시회 ‘CES2022‘가 막을 내렸다. 올해의 키워드는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였다. 전 세계가 팬데믹의 장기화로 앓은 몸살은 비대면 사회를 한층 앞당겼다. 인공지능은 전 산업의 핵심이 됐고 가상세계를 넘어 메타버스로 이어져 인류의 삶마저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복잡계물리(통계물리라는 방법론을 이용해서 하는 연구) 학자인 새뮤얼 아브스만은 그의 저서 에서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의 오류나 허점이 발견되거나 기존 지식의 유용성이 새로운 지식의 등장으로 인해 폐기되는 기간이 급격히 짧아지고 있어 조금만 지나면 낡아 버릴 지식을 암기하기보다 인터넷 검색이 더 효율적이라 했다. 지식의 암기보다 오히려 변화하는 지식에 적응하고 융합하는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

새해,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뉴스를 접하며 무한한 생명과 유한한 자원, 그리고 대체 불가능한 인간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 본다. 인간의 지식 습득은 더 이상 인공지능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급속한 기술 변화 속에서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가치는 비판적 사고와 성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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