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에 100년 지성의 씨앗을 뿌릴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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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동아대학교 특임교수

운동경기를 보면 감독이 ‘타임’을 부르고 선수들에게 새로운 작전을 지시하는 장면이 흔히 나타난다. 경기장 안에서 뛰는 선수에 비해 경기장 바깥에서 관전하는 사람에게는 전체 경기의 상황이 훨씬 잘 보인다. 비슷한 맥락에서 무대를 떠난 사람이 무대에 남은 사람에게 전하는 얘기에는 정확한 진실이 담겨 있어서 무대 위의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선조들이 남겨 놓은 고전을 자주 되씹어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고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대학교수의 고별강의에도 역시 같은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에게도 어김없이 그런 감회가 찾아왔다. 30년 전 별다른 연고가 없던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가 얼마 전 정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상 부산이라는 무대를 떠나자 필자에게도 무대 위에 전하고 싶은 얘기가 떠올랐다.

필자에게 부산과의 인연은 참으로 우연한 것이었고 그 인연은 우리 지성사에서 기구한 운명을 겪었던 마르크스를 통해 맺어진 것이었다. 그 인연으로 동아대학교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맑스 엥겔스 연구소가 만들어졌고 현재 이 연구소는 우리나라 최초로 문헌적 고증에 바탕을 둔 마르크스 엥겔스의 정본 전집(MEGA) 출간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필자가 무대를 떠나면서 떠올린 감회는 이 작업과정에서 얻은 것이다.

부산은 참 살기 좋은 도시이다. 기후도 그러하고 자연경관 또한 어깨를 견줄만한 곳이 흔치 않은 곳이다. 그런데 이런 ‘좋은’ 도시의 이미지는 주로 감성적인 부분에만 집중되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대표적이고 감천마을, 산복도로 등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감성은 지성과 짝을 이루어야 더 완벽해지는 법이다.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존재가 그런 이중적인 균형으로 문명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이란 무대를 떠난 필자의 감회는 이 도시에 지성의 옷을 입힐 수 없을까 하는 것이다. 세계의 유수 도시들에는 그런 지성의 랜드마크가 많고 그것은 도시의 질적 품격을 높이고 있다. 필자의 마르크스 연구 분야를 두고 본다면 먼저 마르크스 엥겔스 정본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가 있다. 1700년에 설립되었다. 20세기 동안 서방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힌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본거지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는 1924년 설립되었고 마르크스 엥겔스의 자필 원고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는 암스테르담의 국제사회사연구소는 1914년에 설립되었다. 동양 최대의 사회사 연구 중심인 도쿄의 오하라 연구소는 1919년 설립되었다.

이들 연구소는 모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해당 분야의 학술적 랜드마크를 이루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들었다고 자랑하는 우리나라에는 부산뿐만 아니라 어디에도 이런 지성의 랜드마크로 손꼽을 만한 연구소가 없다. 100년 이상 학술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축적해야만 가능한 일이고 우리는 그런 장기간의 작업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매우 짧을 뿐만 아니라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생물학적 한계 때문이다. 따라서 지성의 랜드마크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야만 하고 무대를 떠난 사람의 훈수에 기초해 있다.

그래서 부산시에 간곡하게 제안하고 싶다. 100년을 이어갈 지성의 씨앗을 뿌려주었으면 한다. 공모를 통해 일정 학술분야에 특화할 연구소를 선정하고 1년에 몇억 원씩만 꾸준히 지원한다면 위 연구소들에 못지 않은 학술 중심이 부산에 싹틀 수 있을 것이다. 부산시의 의지가 필요한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연구소 지원은 모두 단기적 지원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연구소들도 대부분 공공기관의 지원 덕분에 100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다. 무대를 떠나 이미 당사자의 이해와 무관한 이 충언을 깊이 새겨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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