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죽도’ 잡으려는 수집가들… 욕망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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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병순(58) 소설가가 첫 장편소설 (실천문학사)를 냈다. 첫 소설집 이후 6년 만에 낸 두 번째 소설책이다.

소설 속 ‘죽림한풍’은 바람 부는 대숲을 그린 풍죽도(風竹圖)다. 댓잎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 서걱서걱 들린다는 ‘바람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은 1900년께 그려졌는데 한곳에 머물지 않고 바람처럼 떠돈다. 30여 년이 지난 즈음 ‘죽림한풍’을 그린 화공(병신)의 손자(강석초)와, 그것을 처음 소장한 사람(동치)의 손자(김종하)가 ‘죽림한풍’을 손에 넣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는 게 기둥 줄거리다. 일제강점기 경성미술구락부(경매회사)의 풍경 등이 나온다.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병순 소설가 첫 장편

작가는 “무언가를 광적으로 모으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말한다. ‘벽(癖)이 없는 인간은 볼품이 없다고 합디다.’(55쪽) 뭔가에 빠지는 불치의 벽(癖), 등장인물 이름이 암시적이다. ‘죽림한풍’을 그린 이는 생년의 간지를 따라 ‘병신(丙申)’이고 그것을 처음 소장한 이는 동치(董痴), ‘골동에 미친 바보’라는 뜻이다. ‘병신’이고 ‘동치’여야 무엇을 탐할 수 있다는 거다.

‘죽림한풍’에 담긴 ‘바람’은 뭘까. ‘죽림한풍은 손끝에 닿을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웠다. 잡으려면 멀리멀리 달아났다. 그야말로 죽림한풍은 바람이었다.’(268쪽) 잡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람이다. 그 바람은 다른 말로 하면 욕망인데 작가는 “인간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쉽지 않은’ 말을 한다. ‘욕망 대상’보다 ‘욕망 상태’가 더 순일하다는 걸까. ‘죽림한풍’을 가지는 것보다 차라리 가지려는 애태움과 간절함이 우리 삶의 알맹이에 가깝다는 걸까.

손자 둘이 마지막에 경매시장에서 그림을 놓고 양보 없이 값을 매기다가 둘 중 하나가 문득 포기하는데 다른 상대는 이제 죽림한풍을 손에 곧 넣을 거라고 안도하지 않는다. 속으로 상대를 향해 ‘어서 값을 불러보란 말이오!’라고 외친다. 죽림한풍, 바람을 붙잡으려는 욕망의 바람이 계속 불어야 하기 때문이다. ‘죽림한풍은 그림이 아니라 애달픔이다.’(276쪽) 주제와 인물에 대한 아쉬운 독후감이 없지 않다.

‘춘화를 후무리려고 야비다리를 친다는 걸 알았지만 끙짜놓을 수는 없다’(150쪽)라는 문장처럼 이 소설의 우리말 구사는 예사롭지 않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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