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대선 정국에 묻힌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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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못잖게 중요한 지역 일꾼, 대충 뽑아선 안 돼

오는 3월 9일 치러지는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 고민”이라는 유권자들의 볼멘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대선을 바라보는 수많은 국민의 공통된 평가가 ‘역대급 비호감 선거’란 표현이다. 유력한 두 대선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도덕성과 자질 논란, 가족 리스크가 주된 원인이다. 양측이 그간 정책 대결 없이 무분별한 의혹 제기와 극단적인 비방전에 치중하면서 정치 혐오감을 키우고 방황하는 유동층도 늘리는 모양새다.

올해는 대선만큼 중요한 국가 대사가 또 있다. 6월 1일로 예정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다. 광역·기초지자체 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을 뽑게 된다. 안타까운 점은 본래 대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기 마련인 지방선거가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선 분위기에 묻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영 갈등과 국론 분열이 극심한 대선 과정에서 고조된 국민의 정치 불신이 지방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걱정이다. 더욱이 지방선거는 83일 먼저 실시될 대선 결과에 휘둘려 인물 중심으로 지역의 참일꾼을 선출하는 데 차질이 생길 가능성마저 높다. 올해가 진정한 지방자치와 분권의 원년이 돼야 할 중차대한 시기라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 “역대급 비호감 대선”
정치 혐오감·유동층만 키워
지방자치법 32년 만에 개정
의회 권한·독립성 한층 강화
지선 출마자, 공천에만 혈안
중앙 정치권 눈치 보기 급급
지역 현안도 찬밥 신세 여전
지선, 분권 활성화 잔치 돼야
여야, 우수 인재 발굴 주력을
객관적 공천 심사 과정도 중요
유권자, 세심한 후보 검증 필요
지역 도움되는 인물 선택해야

■지방의회의 위상이 높아진다

2022년은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1991년 이후 자치분권에 가장 획기적인 변화가 기대되는 해다. 32년 만에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13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개정법에 따라 지방의회의 권한과 독립성이 한층 강화돼 지방정부와 힘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춰질 전망이다. 먼저 광역·기초의회의 인사권이 독립돼 의장은 의회 사무처 직원에 대한 인사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정책 전문 인력을 의원 정수의 2분의 1 범위까지 충원할 수도 있다. 의회의 정책 역량과 전문성을 높여 지방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지역민의 의견을 광역시·도 정책과 시·군·구정에 잘 반영할 목적에서다.

부산시의회의 경우 당분간 의회 사무처 안정화를 위해 부산시와 점진적인 공무원 인사 교류를 통해 인력을 교체해 나갈 계획이다. 3년 후에는 시와 무관하게 완전히 독립적인 인사를 단행한다. 이와 함께 시의회 사무처장 공모에 나서고 구·군의회와도 직원 인사 교류를 추진할 방침이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지방의회가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공정한 인사를 실시하면서 제 역할을 다하려는 각오와 의지가 중요해졌다. 지방의회와 지방의원들이 올해부터 국민의 신뢰를 얻으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안착시키기 위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자치분권·지방선거 위협 요소

돌이켜보면 일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의 각종 비위나 의혹이 잊을 만하면 불거져 국민을 실망시켰다. 특히 전국 기초지자체와 기초의회에서 그동안 벌어진 이권 개입과 폭언·폭력, 감투싸움, 파행 운영 등 여러 볼썽사나운 모습 때문에 제기된 의원들의 자질 미달과 전문성 부족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는 지난 30년간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게 하기는커녕 자치분권에 대한 회의감만 확산시킨 문제점이다.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동네 유지가 술을 먹다 공천을 받았다”고 지적한 건 적절하지 못한 측면이 있으나, 지역 일꾼들의 함량이 많이 떨어진다고 보는 국민 인식에 기댄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신은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의 지방 이양을 포함한 실질적인 자치분권이 시기상조라는 주장과 지방의회 무용론에 힘을 실어 주는 만큼 지역 정치권의 자질 함양과 신뢰 회복 노력이 절실하다.

그런데도 지역 정가와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들 사이에 불신 해소나 지역민과 소통을 위한 움직임은 거의 없는 상태다. 여야 대선 캠프에 줄을 서기에 혈안이 돼 있다. 현재 각 당이 지방선거 일정을 제쳐 둔 채 오로지 대선에 사활을 걸고 모든 관심과 힘을 집중하는 까닭이다. 지방선거를 꿈꾸는 이들은 공천 탓에 중앙 정치권 눈치를 보는 구태를 거듭하고 있다. 대선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데다 서울 여의도가 지역 정치까지 주무르는 현실에서 지방선거가 더더욱 뒷전으로 밀려나 지역 현안과 민생이 찬밥 신세가 될 게 염려된다.



■자질과 능력 갖춘 후보 많아야

올 지방선거에 각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당위성은 많다. 13일 인구 103만 명인 경남 창원시가 예산, 조직 등 다방면으로 광역시에 버금가는 대도시급 행정 대우를 받는 특례시로 승격했다. 이날 대통령과 시·도지사가 모여 국가균형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체인 중앙지방협력회의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열려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이어 오는 2~3월께 국내 첫 초광역권 통합·협력 모델인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가 출범한다. 올해 부울경 지역 지방정부·지방의회의 권한과 역할이 커져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의 실효적인 추진에 큰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에서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지역 발전에 헌신할 수 있는 자질과 역량이 뛰어난 일꾼을 뽑아야 하는 이유다.

지방선거를 지방분권 활성화를 위한 잔치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여야의 우수 인재 발굴과 엄정하고 객관적인 후보 공천 작업이 요구된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19대 대선 이듬해 치러진 지방선거는 민주당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쳐 정당이 중시되고 인물 검증에 등한했다. 이보다 앞선 부산 지역 각종 선거에선 “보수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이란 우스갯소리가 먹혀들 정도였다. 자치분권을 퇴행시키는 부적격자의 당선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최근 공직선거법과 정당법 개정으로 3월부터 만 18세 청소년이 지방선거와 총선에 공천을 받아 출마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참신한 정치 신인과 활동적이고 혁신적인 지역 일꾼들이 대거 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꼼꼼한 검증·신중한 선택 필요

자치분권의 착근과 발전은 지방자치 환경이 크게 나아진 올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따라서 성숙한 자치분권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정당마다 좋은 후보들을 내고, 유권자들은 더 유능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잘 가려 뽑는 게 시대정신이 돼야 마땅하다. 국민의 삶에 더 직접적이고 세세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선거가 국가 지도자를 뽑는 대선 못지않게 중요해서다. 지금은 소멸 위기로 치닫는 지방을 살리는 일이 급선무다. 이 때문에 정당과 지역 정치권, 출마 예정자들은 대선에 파묻힌 다양한 지역 현안과 어젠다를 꺼내서 면밀히 검토해 실효성 있는 공약과 비전을 제시하는 등 지방선거를 착실하게 준비해 유권자들 앞에 서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선거운동이 대세를 이루지 싶다. 이럴 경우 출마 후보들은 이름조차 알리기 어려워 애가 탈지도 모른다. 결국 몫은 유권자에게 있다. 지역 발전과 민생 안정, 자치분권 실현에 기여할 적임자를 선택하는 일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대선 결과와 정당에 연연하지 말고 기초의원부터 광역단체장 후보까지 자질과 공약을 철저히 따져 보고 인물 본위로 신중하게 투표하는 게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 각계각층이 지방선거에 애정 어린 관심을 두기를 당부한다. 지방선거의 본질과 의미를 잘 살리자.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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