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K방역과 백신, 과신과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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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라이프부 차장

10일부터 코로나19 방역패스가 전면적으로 확대 시행됐다. 이제 대형마트, 백화점, 서점에 가려면 QR코드로 백신 접종을 인증하거나 PCR 음성확인서를 내야 한다. 백신을 맞지 않은 국민은 혼자 장을 볼 수도 없게 된 셈이다. 앞서 법원이 학원과 독서실, 스터디카페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에 제동을 걸었지만, 정부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이유로 방역패스를 계획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당장 대표적 ‘3밀(밀접 밀집 밀폐) 공간’인 버스와 지하철은 되고, 생필품 구매와 직결되는 대형마트는 왜 안되느냐는 반발이 터져 나온다. 감염병 예방이라는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기본권이 충돌한 셈이다. 우리보다 앞서 백신패스를 시행하거나 도입하려 했던 미국이나 유럽에서 격렬한 국민적 저항이 일어났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7일 열린 학원 등의 방역패스 효력 정지 신청 사건 심문에서 방역패스 적용의 정책적 근거를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합당한 이유나 뚜렷한 기대 효과를 제시하지 못했고, 이에 학부모단체 손을 들어준 법원 결정에 유감을 표했다. 나아가 일각에서 제기하는 ‘백신 무용론’이나 ‘위험론’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과학적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가 코로나 사태 초기 전국적 확산의 단초가 된 특정 종교 집단을 대하듯 미접종자를 잠재적 보균자나 ‘공공방역의 적’으로 몰아 갈라치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대형마트·백화점도 방역패스 전면 시행
학원·독서실은 정부 근거 제시 못해 패소

백신 안전성에 대한 국민 불신 해소 없이
밀어붙이기식 정책 결코 성공할 수 없어

정부로서야 이 같은 혹평이 억울하겠지만, 이는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작지 않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는 가장 늦게 지난해 2월이 돼서야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당시 백신 조기 확보 실패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정부는 미국이나 유럽 등 백신 선도국가에서 보고되는 각종 부작용을 거론하며 ‘백신 위험론’으로 맞받아쳤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성과 효능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책임 있는 정부의 조치임을 강조했다.

백신 확보를 게을리 한 실책을 신중론으로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정부는 일단 백신이 도입되자 특유의 ‘속도전’을 펼쳤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백신 1·2차 접종 완료율은 82.7%로, 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접종률을 달성할 만큼 백신에 ‘올인’하는 모습이었다. 청소년 접종과 부스터샷(3차 접종)에도 속도를 내면서 ‘전 국민 백신 접종 완료국’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백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접종 시작을 전후해 불신에서 과신이라 할 정도로 표변하는 사이 이를 뒷받침할 만한 합당한 근거가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국내 도입된 백신들은 긴급사용승인 상태에서 접종이 진행돼 왔다. 현재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승인을 받은 백신은 화이자 제품이 유일하며, 이 역시 안전성과 효과 기준이 충분히 검증됐느냐를 두고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실정이다. 더구나 각종 변이 바이러스 기승으로 기존 백신의 효과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장 주변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가볍게는 어지럼증이나 근육통부터 심하게는 신체 마비나 장기 손상까지 부작용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백신 접종 후 사망했다는 신고가 1100건이나 접수됐고, 중증 역시 1300여 건이 신고됐다. 그럼에도 이 중 인과성이 인정된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중병 환자로서는 병을 낫기 위해 어떤 부작용이든 감수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혹시 모를 감염병 예방을 위해 또 다른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맞히려는 정부 만큼이나 안 맞으려는 미접종자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밀어붙이기식 방역패스는 K방역의 성과에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 접종률’이라는 또 하나의 훈장을 얹겠다는 정부의 조바심이 엿보인다. 하지만 국민 정서와 감수성을 면밀히 살피지 않은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K방역의 요체로 정부는 ‘3T(Test(검사)-Trace(추적)-Treat(치료))’를 꼽는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T’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Trust)다. 국민들은 백신 부작용에 대해 정부가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최악의 경우에도 정부가 마지막까지 국민 편에 선다는 믿음이 있을 때 국민들은 부작용을 감수하고 기꺼이 접종에 나설 것이다. 과거 광우병 사태나 세월호 참사 같은 국가적 재난 상태에서 보듯 ‘음모론’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숙주 삼아 감염병처럼 퍼지는 법이다.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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