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미성년 피해자 보호 위해 국회가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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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1년 마지막 달,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 한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19세 미만 미성년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6항에 관한 것이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은 일반 법원의 판결과는 달리 모든 국민에 대해 효력을 갖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에 관심을 가져야 함에도 실상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사건도 그렇다.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녹화 진술
헌재, 곧바로 증거 인정은 ‘위헌’ 결정
공정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 권리 인정

피고 방어권 못지않게 아동 보호 중요
2차 피해 막고 증거능력 방안 강구해야
국선변호사 등 부실한 제도도 보완을


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1항은 미성년 피해자의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비디오녹화기 등 영상물 녹화 장치로 촬영·보존하도록 정하고, 제6항에서는 이렇게 촬영한 영상물에 수록된 미성년 피해자의 진술은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인 등의 진술에 의해 진정함이 인정된 경우에는 영상물에 수록된 미성년 피해자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인 청구인이 문제 삼은 건, 위 규정으로 인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것이었다. 미성년 피해자의 법정 진술 없이도 영상물에 수록된 미성년 피해자 진술을 성폭력범죄의 ‘본증거’로 사용될 수 있게 됨으로써,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반대신문권을 전혀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형사소송절차에서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피고인 권리 보장은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피해자 보호’다. 그런데 종래 형사소송절차에서 피해자 지위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사법절차에서 새로운 위험에 노출되는 현상에 대한 대응은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주목받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가 된 것도 피해자 보호를 위한 규정이다.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 진술 과정에서의 심리적·정서적 충격 등 새로운 추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증거능력의 특례를 규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항에 의해 미성년 피해자의 법정에서의 조사와 신문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 규정은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보호 필요성 때문에, 여러 차례의 개정을 통해 13세 미만의 피해자에서부터 16세 미만의 피해자로 확대되었다가 미성년 피해자를 모두 포함하게 되었다.

2019년 기준, 지난 10년 동안 아동과 청소년 대상 성폭력범죄는 14.3% 증가했다.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성폭력범죄는 주거지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범죄의 30% 이상은 친족·이웃·지인·친구 등 피해자와 일정한 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미성년자에 대한 범죄의 특성과 성폭력범죄의 파괴적 영향으로 인해 미성년 피해자의 상당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후유장애, 각종 사회부적응 현상을 겪는 등 피해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폭력범죄의 경우, 범행 당시 특별한 물적 증거가 남지 않거나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중요한 사건이 다수여서,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때에는 피해자의 법정 증언 시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격렬한 탄핵이 이루어지게 된다. 때문에 법정에서 성폭력 피해를 복기하고 격렬한 탄핵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범죄행위만큼이나 피해자에게 강한 정신적 충격과 모멸감을 줄 수 있다. 더욱이 미성년 피해자의 경우는 진술 특성에 따라 성년 피해자보다 법정 진술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을 우려는 훨씬 큰 반면, 실체 진실의 발견에 대한 기여는 적을 수 있다. 그리고 위 규정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이 영상물 증거에 대해 다툴 수 있는 여러 방법이 형사소송절차에 있다.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처럼, 피고인에게 공격·방어 방법을 적절히 보장하면서도 미성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조화로운 방법을 강구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우선시되어야 하는 우리 모두의 공익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보호장치를 제거하기 전에 피해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충분히 현실적으로 검토했어야 한다.

다수의견이 조화적 방안이라고 한 피해자 국선변호사제도도, 법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패’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피해자 조력제도로 제도시행 10년이 되었지만, 피해자 측은 물론이고 변호사들도 부실 운영으로 인한 문제점이 크다는 것을 지적해 왔다. 현실성 없는 보수체계, 시스템 부재로 인한 담당 변호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인식 부족, 담당 변호사 수의 부족 등. 결국 국가가 만든 제도의 부실로 인한 피해는 다시 피해자들이 떠안게 되는 구조적 악순환을 낳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효력은 시작되었고, 미성년 피해자는 이제 법정에서 일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대신문의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이젠 국회가 나설 차례다. 이 조항이 사라졌어도 미성년 피해자를 법정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어떤 제도를 성안해야 하는지, 제발 깊게 그러나 신속하게 고민하고 실행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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