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두더지 매개로 자연이 전하는 장엄함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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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잡기/마크 헤이머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지는 집 마당은 온 세상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락 한 알이 우주라는 현학적인 말이 아니더라도 나무 한 그루의 한해살이와 벌레 한 마리의 한살이는 삶을 되돌아보고, 앞날을 내다보게 한다. 일찍 떨어지는 낙엽에서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난 동무의 얼굴을 만난다.

는 이처럼 자연을 시인의 감각과 철학자의 마음으로 바라본 책이다. 자칫 뿅망치로 때려잡는 두더지 잡기 게임을 다뤘을 것으로 여기기 쉬우나 ‘나는 정원사이다’라는 첫 문장에서 오해였음을 금방 느끼게 된다.

저자는 어릴 적 집에서 쫓겨나 2년 가까이 숲과 강가, 나무 밑에서 새와 벌레와 함께 잠을 자는 생활을 했다. 그는 이후 정원사가 되어 잔디를 깎고, 울타리를 손질했다. 일이 없는 겨울철에는 두더지잡이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두더지는 저자가 자란 영국에서는 농사를 망치는 유해 동물로 취급한다. 농부들에게는 땅속의 무법자나 다름없다. 마크 헤이머는 평생 그 존재를 만난 경험을 고리로, 자연과 동물이 전하는 장엄함을 담담히 적고 있다.

그는 이제 두더지 사냥을 하지 않는다. ‘노년의 정원사가 자연에서 배운 것들’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의 뒷부분에서 그 얘기를 만날 수 있다. 각자 삶을 살아가건만 인간 앞에서 단지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목숨마저 빼앗기는 숱한 생명체에 관한 고심이 읽힌다.

헤이머는 60세가 넘어 이 책을 썼고, 지금도 꾸준히 후속작을 발표 중이다. 그의 작품들이 알아차림과 치유의 글쓰기라는 마음살림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마크 헤이머 지음/황유원 옮김/카라칼/288쪽/1만 7800원. 이준영 선임기자 g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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