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생각의 기척] 1월, 야누스의 달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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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자

‘이제 잠잘 시간이구나, 아가야.’ 세상의 모든 아기들은 엄마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 꿈속으로 빠져든다. 반면에, 무엇이 그리 난해하기에 <고백록>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이 무엇인지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고백했을까? 시간을 붙들어 매어서 과거는 회상하고 미래는 예견하려 했던 인간 문명의 노력이 다종다양한 달력 체계를 만들어 냈다. 그중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그레고리우스력이지만 이 역법 체계의 근간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율리우스력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바로 그 율리우스 말이다. 현재의 달력은 12월 31일에 도돌이표가 달려 있는, 그러니 무한 반복하는 천체들의 음악이다. 연도는 2021년에서 2022년으로 직선운동을 하고, 1년은 12월에서 다시 1월로 순환운동을 하는 것이다.

역법 체계 근간은 카이사르의 율리우스력
영어의 1월도 로마 시대 ‘시간의 신’이 어원
‘신성한 달’의 시작, 혼돈 종식의 한 해 되길

그리하여 착실하게 도돌이표를 준수한 달력이 다시 시작의 달인 1월로 되돌아왔고, 2022년 검은 호랑이의 해로 간 것이다. ‘해’에 해당하는 독일어 ‘야르(Jahr)’는 간다는 뜻의 ‘gehen’(영어의 go)에서 비롯되었으며, 같은 뜻의 라틴어 ‘아누스(annus)’는 달리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언제나’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always’에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way)’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시간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로마 공화정 말기의 종신 독재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46년을 ‘혼돈의 마지막 해’로 명명했다. 달력과 계절력의 차이가 90일이나 되어 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카이사르는 드디어 역법의 개혁을 단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당해에 90일을 더 보태어 1년이 총 445일이 되게 하고 혼돈이 제거되는 다음 해인 기원전 45년부터는 1년이 365일로 채워지게 했다.

한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대의 명예란 과연 어떠한 것일까?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되기 전에 로마 원로원은 그가 태어난 해인 ‘퀸틸리스’의 달(원래는 5월이라는 뜻)을 그의 이름인 율리우스로 변경할 것을 선포했다. 신의 이름과 축제명과 밋밋한 숫자로 구성되어 있던 달의 이름에 인간의 이름이 들어가게 되는 일은 카이사르의 경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율리우스력을 조금 더 손을 보고 최종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도 8월 1일에 있었던 악티움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여 그의 존엄한 칭호 아우구스투스가 ‘섹스틸리스’(원래는 6월이라는 뜻)를 대체하게 하는 특별한 영예가 주어진 것이다. 영어의 ‘July’(7월)와 ‘August’(8월)의 유래가 이러하다.

‘내가 길이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것은 기독교의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런데 재미있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한 구절 하나가 같은 복음서 10장 9절에 나온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여기에서 복음서 저자는 왜 느닷없이 예수를 문으로 비유하는 것일까? 그건 이 저자가 로마제국의 야누스(Janus) 신 숭배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야누스 신의 지위를 탐내고 빼앗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이른바 이교로부터 가져다 쓴 것은 12월 25일 성탄절뿐만이 아니었다. 야누스는 고대 로마에서 시간과 영원의 신이었고, 시간과 영원은 출입문을 통해 오고 가는 것이기에 ‘야누아(Janua)’ 곧 문을 지키는 문지기 신이기도 했다. 오비디우스는 야누스 신이 문을 열고 닫는 열쇠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가 시작의 신이니 1월이 그에게 바쳐진 신성한 달인 것은 당연하다. 1월에 대한 영어 단어인 ‘January’ 역시 야누스의 달이라는 뜻이다. 1월이 오면 사람들은 첫 번째 희생제를 올리고 가장 먼저 그에게 기도했다. 두 얼굴의 신 야누스, 그의 한쪽 얼굴은 서쪽의 과거를 향하고 다른 한쪽 얼굴은 동쪽의 미래를 향하고 있다.

지난 2020년과 2021년의 2년은 코로나 혼돈으로 꽉 채워졌고, 새해도 온통 이것으로 잠식당할 기세다. 지루한 먹구름이 정말 오래도록 우리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 2년 동안 우리는 동병상련의 모습을 보였을까 아니면 각자도생으로 바빴을까? 어느 쪽이건 나는 올해가 ‘혼돈의 마지막 해’가 되기를 기원하며, 그런 의미에서 야누스의 동쪽 얼굴을 바라보면서 올해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기대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기대를 디디고 서서 도약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코로나라는 혼돈의 종식과 함께 우리의 온갖 어리석음과 속 좁음과 허위적 분노의 열기도 조금이나마 가라앉기를 기대하는 건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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