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칼럼] ‘삼프로TV’ 인기가 말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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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며칠 전 밥 먹는 자리에서 친구가 지나가는 말처럼 “‘삼프로(TV)’ 봤나?”라며 물었는데, 평소답지 않게 발끈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주식 유튜브 채널로만 알고 있던 곳에서 대통령선거 후보를 초청해서 관련(알고 보니 경제 정책 전반) 대담을 나눴다는 게 영 마뜩잖았다. 구독자 숫자를 늘리기 위한 주최 측의 얄팍한 계산이거나 구독자 숫자에 덩달아 편승하려는 대선 후보의 노림수가 맞아떨어진 거겠거니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친구와 헤어진 뒤 ‘삼프로TV’를 찾아봤다. 일단은 ‘진상 파악’을 해 보자는 심사였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먼저 신문, 방송과 같은 전통 매체 뉴스에만 매달렸던 나야말로 ‘꼰대’ 수용자는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이다. 네거티브가 판을 치는 선거판에서도 선거 보도 지형이 달라지고 있음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후보나 유권자가 원하는 소통 방식의 또 다른 일면을 본 것 같아 정책 선거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 ‘삼프로TV’
대선 후보 대담 1000만 뷰 넘겨

네거티브 접고 정책 선거 가능성
기성 언론 뭐했나 되돌아보게 돼

전체 맥락 읽는 유권자 노력 필요
정책 검증 도구 새 지평 열까 주목


도대체 삼프로TV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경제 전문을 표방하는 이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수많은 영상 중 대선 관련 콘텐츠는 4편에 불과하다. 처음 영상을 올린 시점이 지난해 12월 25일(이재명·윤석열 후보 편)이고, 지난 2일 두 편(안철수·심상정 후보 편)이 추가됐다. 그런데 영상 조회 수가 엄청났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4일 오후 6시 현재 윤석열 후보 302만 회, 이재명 후보 577만 회, 안철수 후보 108만 회, 심상정 후보 40만 회 등 4편을 합하니 1000만 뷰가 넘는다. 아이돌 가수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도 아니고, 경제 정책을 다룬 선거 대담 방송 콘텐츠에 1000만 뷰라니 입이 딱 벌어졌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가 뭐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삼프로TV에 접속하려고 검색창 구글에서 삼프로를 치자 올라온 연관 검색어가 생각난다. 이재명, 윤석열 외에 ‘삼프로가 나라를 구했다’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이건 또 뭔가 싶어서 그때부터 ‘삼프로가 묻고 정책이 답하다’에 출연한 대선 후보들의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한 사람당 1시간 30분 남짓 분량이니 꽤 많은 시간 품을 들였다. 후보에 따라선 박학다식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시간이 물 흐르듯 지났지만, 어떤 후보 편에선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적잖은 인내가 필요했다.

대담자 3명이 후보를 당황하게 할 만큼 날 선 질문을 퍼붓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차분히 들어주고 앞뒤가 맞지 않는 답변에는 재질문을 통해 콕 집어 주거나 답변을 하는 사람조차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횡설수설하는 대목에선 오히려 “이런 말씀인 거죠”라며 깔끔하게 정리를 해 주었다. 진행 시간과 발언 형식 등이 자유로운 만큼 후보의 자질을 판단하는 데도 상당히 도움이 될 듯했다. 추측건대, 그래서 나온 말이 ‘삼프로가 나라를 구했다’가 아니었을까 싶다.

수만 개씩 달린 댓글은 더 놀라웠다. 여타 포털 사이트에서 특정 후보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에 흠집 내기라도 하듯 독설을 퍼붓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두 후보의 많은 면을 보게 되네요” “후보들의 정책을 제대로 알게 해 준 삼프로TV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지지하는 후보가 없었는데 누굴 뽑아야 하는지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삼프로입니다” 등 후보 자질과 역량을 평가한 글이 줄을 이었다.

반면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전통 매체 역할을 유튜브가 대신한다는 것은 안타깝다. 물론 삼프로TV 같은 유튜브는 상대적으로 객관성 공정성 등을 최우선 고려해야 하는 기성 언론과 달리 시간이나 진행 방식 등에 구애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성 언론이 그동안 보여 준 무사안일함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지상파방송만 하더라도 한계는 있지만 새로운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나만 해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삼프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방어 막부터 쳤다. 알게 모르게 내 밥그릇에 대한 위협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시대는 인공지능(AI), 대체불가능토큰(NFT), 블록체인, 메타버스로 가고 있다. 매체 환경뿐 아니라 유권자도 달라져야 한다. 누군가가 뽑아 준 기사 제목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후보의 생각, 자세, 전체 맥락을 읽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삼프로TV가 물꼬를 텄지만, 안보 문화 교육 복지 등 각 분야에서 후보의 식견을 들을 다양한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다. 안 그래도 ‘토론 부재’라는 아쉬움이 어느 때보다 컸는데, 이렇게라도 개인 심층 인터뷰가 이어진다면 유권자의 선택은 한층 풍부해질 것이다. 한편으론 정파성 시비를 뛰어넘어 정책 검증의 도구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보인 삼프로TV 시도가 제20대 대선 지형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지켜보고 싶다.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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