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우토로와 일본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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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인종에 대한 폭행, 유대인교회에 대한 방화, 스킨헤드와 같은 인종혐오집단으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980년대 ‘증오 범죄’라는 용어를 도입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증오범죄통계법’을 제정했다. 증오 범죄는 다른 인종이나 국적, 종교,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극심한 편견에서 주로 발생한다. 스릴이나 권력욕, 자신의 이권 보호와 함께 마치 십자군처럼 사악한 존재를 없앤다는 헛된 사명감이 주된 원인으로 분류된다.

아시아에서 증오 범죄의 대표는 일본인 듯하다.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등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가지 않더라도 2009년 12월 ‘재일조선인의 특권을 허락하지 않는 시민모임’ 소속 깡패들이 일본 교토의 조선인 마을 우토로에 쳐들어가 “당신들 존재 자체가 범죄다. 일본인으로서 용서하지 않겠다”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교토 조선학교에도 몰려가 “김치 냄새난다. 구더기 조선인은 조선반도에 돌아가라”며 욕설을 퍼부어 어린 학생들이 공포에 질려 수업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사회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교토 우토로 마을은 제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일본 정부가 전투기 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해 동원한 조선인 1300여 명이 인근에 상하수도 시설조차 없이 비참하게 살다가 정착한 곳이다. 이런 우토로 마을에 20대 일본인 남성이 “한국이 싫다”는 이유로 불을 지른 혐의로 체포돼 지난달 27일 재판에 넘겨졌다. 이로 인해 올해 4월 개관할 ‘우토로평화기념관’에 전시될 역사 자료 50점이 안타깝게도 소실됐다. 방화범은 도쿄올림픽 기간에도 나고야시 재일대한민국민단 건물과 인근 한국 학교에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들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일본인에 의한 증오 범죄는 경제 양극화로 발생한 다수의 빈곤층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2010년 이후 중국에 의해 G2에서 밀려나는 등 국력의 쇠퇴에 따른 조급함도 한 원인이기도 하다. 증오 범죄가 침묵으로 허용되는 사회는 ‘누구나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만 가중되고, 민주주의가 싹틀 수 없다. 서로 다르다고 차별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회와 이를 용인하는 국가가 어떻게 세계 평화를 입에 담을 수 있을까? 2022년, 우토로 방화 사건을 대하는 일본의 행태에서 ‘문명국가’의 품격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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