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 너머로 '해'를 보냈다. 끝은 시작이라고 '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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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 일몰 명소 셋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마침 플레이리스트에 있던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가 흘러나왔다. 일몰을 보러 거제로 달려가는 차 안이었다. 순간 울컥할 만큼 공감이 됐다. 새해가 코앞에 다가와서였을까. 열두 달을 밝혔던 해가 지고 있다. 떠나보내는 마음은 아쉽지만 ‘지는 해’는 늘 약속한다. 내일 다시 떠오르겠다고. 그러니 새로운 꿈을 꾸어 보자. 해 질 녘 거제에 있다면 가볼 만한,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세 곳을 다녀왔다. 경남 거제시의 일몰 시각은 12월 30일 남부면 기준 오후 5시 23분(한국천문연구원 천문우주지식정보)이다.


여차~홍포 해안도로
절벽 깎아 만든 3.5km 도로 환상적
전망대선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섬 풍경

성포 해안산책로
바다 위 쭉 뻗은 길 걷는 내내 바다 냄새 물씬
물결 물들이는 붉은 일몰의 장관 눈앞에서 목격

옥화마을
일출 명소지만 SNS에선 ‘노을 뷰’로 ‘인생 사진’
골목 담벼락마다 눈길 끄는 벽화들에 발길 멈춰

■명불허전이었다, 여차~홍포 해안도로

거제시 남부면 다포리 여차~홍포 해안도로는 거제에서도 남쪽 끝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옆에 끼고 달릴 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다. 거제 8경에 꼽힐 만큼 공인된 비경을 자랑한다.

여차 몽돌 해수욕장과 홍포마을을 잇는 해안도로는 약 3.5㎞. 해안 절벽을 깎아 만든 길이라 바다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환상적일 수밖에 없다. 길이 구불구불한 데다 일부 구간은 시멘트길과 흙길이라 운전하기가 쉽지는 않다. 길이 좁은 곳에서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식은땀이 난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주말에도 북적거림은 없다. 도로 중간에 병대도 전망대와 여차 전망대가 있고, 덱이 설치된 곳도 있다. 사실 이 도로에선 바다가 보이는 모든 곳이 전망대다. “진짜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비게이션이 ‘여차 홍포전망대’로 알려주는 곳은 대개 ‘병대도 전망대’이다. 홍포마을 쪽에서 진입했을 때 첫 번째 전망대이다. 이곳에서 거제 바다와 섬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고 하니 ‘오늘의 일몰 포인트’로 잡았다. 14번 국도를 쭉 타고 가다가 다포삼거리에서 홍포로 향했다. 홍포에서 들어가면 비포장도로를 500여m만 달리면 병대도 전망대이다. 거가대교에서 내려서도 한 시간쯤 더 걸린다.

전망대 앞쪽 공터에 여러 대 주차가 가능하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왼쪽부터 대병대도, 소병대도, 매물도, 소매물도, 가왕도이다. 시린 겨울 바다에 박힌 섬들이 꿈결에 보는 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멋지다. 탁 트인 시야에 머릿속까지 시원해진다.

해는 전망대 오른편으로 떨어지는데, 높게 자란 나뭇가지가 시야를 살짝 방해한다.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싶어졌다. 서둘러 홍포마을회관 쪽으로 되돌아 내려갔다. 마을회관 앞과 도로 건너편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곳도 숨은 일몰 명소였는지 이미 일몰객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오후 5시 10분을 넘어서자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이 주황빛으로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다. 저 멀리 섬들이 박힌 바다 위로 동그란 해가 떨어진다. 바다가 불타오른다. 수평선에 깔린 구름 속으로 해가 사라지자 이번엔 하늘이 더욱 불타오른다. 화려한 피날레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홍포의 해는, 보는 이의 마음에 따뜻한 빛을 켜고 사라졌다.



■지는 곳으로 떴다, 성포 해안산책로

거제 주민에게 일몰 좋은 곳이 어디냐 물으니 ‘성포 해안산책로’라 답했다. 성포 해안산책로는 거제시 사등면 성포리 해안에 설치된 덱 길이다. 이름난 관광지는 아니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현지인 일몰 핫플’이라고 했다. 찾아 보니 최근 SNS에서 ‘일몰 뷰’로 유명한 온더선셋 카페가 있는 곳이다.

해안 덱 길과 전망대는 거제시에서 설치한 것이고, 카페에서 해안산책로로 이어지는 연결 다리가 있다. 인근 주민들은 가벼운 산책 코스로 애용하고 있다.

성포항 인근에서 하사근 마을을 잇는 덱의 전체 길이는 534m이다. 덱 길 중간에 바다를 향해 전망대 두 곳이 뻗어 있다. 전망대 쉼터에 들렀다가 천천히 걸어도 편도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바다 위에 길이 나 있어 걷는 내내 바다 내음이 짜릿하게 전해진다.

주차를 해야 한다면 ‘사등면사무소’가 적당하다. 면사무소에서 길을 건너면 성포항 쪽 진입로가 가까이 있다. 카페 쪽 도로의 갓길에도 차들이 주차해 있고, 하사근 마을쪽 진입로에 가깝다. 카페에 들를 생각이라면 카페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해 지기를 기다리며 멈춰 서서 바라본 바다 풍경이 아기자기하다. 바다를 바라봤을 때 오른쪽으로 가조도와 가조연륙교가 펼쳐진다. 사람들이 ‘고래섬’이라 부르는 귀여운 섬도 보인다. 섬 모양이 수면 위로 나온 고래 등을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노루섬’이다.

서쪽으로 해가 점점 떨어지면서 바다 위로 강렬한 황금빛을 쏘기 시작한다. 산책객도 일몰객도 카페 방문객도 셔터를 누르느라 분주해진다. 붉은 하늘과 그를 온전히 반영한 물결, 길쭉하게 뻗은 전망대가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이쪽저쪽 전망대를 오가며 ‘해’에 다가섰다 물러섰다 취향껏 일몰을 감상하기 좋다. 홍포의 해가 저 멀리서 아득하게 사라졌다면, 여기 성포의 해는 바로 눈앞에서 이별을 고한다.



■찍으면 인생샷이 된다, 옥화마을

거제시 일운면 옥림리 옥화마을은 ‘노을 뷰’로 핫하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일출 명소로, 산으로 해가 넘어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일몰을 즐길 수는 없다. 해가 산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순간 발길을 돌릴까 했다. 하지만 이미 마을 입구에서 ‘인생샷’ 느낌이 오는 곳들을 목격했다. 마을 구경도 하고 노을도 만나보기로 했다.

‘옥화마을회관’을 지나쳐 파란색 컨테이너가 모여 있는 쪽으로 들어가면 주차장이 넉넉하게 마련돼 있다. 컨테이너는 어촌계 사무실, 창고 등이고 화장실도 그곳에 있다.

주차 후 마을회관 쪽으로 향했다. 마을 입구 무지개색 해안 경계석은 핫함 그 자체다. SNS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인생샷들이 여기서 탄생했다. 지나는 차량이 많지는 않지만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마을로 눈길을 돌리니 벽화들이 발길을 당긴다. 작은 마을 담벼락마다 ‘바다’가 펼쳐져 있다. 마을 특산품인 문어부터 해녀, 색색 해파리, 불가사리, 정어리떼까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제의 시화 '동백꽃’이 둘러싼 집도 강렬하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만큼 ‘조용은 기본 매너’임을 잊지 말자. 나무 세 그루가 밑동부터 얽혀 있는 연리목도 인상적이다.

마을을 둘러본 후 해안거님길로 발길을 돌렸다. 370m 해상 덱 구간은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을 선물해 준다. 맑은 날 이곳을 걸으면 이온음료 CF 주인공이 된 듯 제대로 청량감을 느낀다고 한다. 덱 중간쯤엔 개인 소유 동백정원이 있다. 푸드득푸드득 작은 동박새 무리의 날갯짓 소리와 노랫소리가 발걸음을 즐겁게 한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해안거님길 2구간’ 전체를 다 걸어봐도 좋겠다. 옥화마을에서 장승포동까지 이르는 3km로, 해안 옆 산길을 걸을 수 있다.

하늘에 노을이 깔리기 시작한다. 하필 찾아간 날 구름이 많이 끼어 광활한 노을은 만나지 못했지만 낭만만큼은 아쉽지 않다. 작은 어촌마을 앞바다에 잔잔하게 내려앉은 노을빛이 평온함을 준다. 구름 사이사이 은근한 노을이 조용히 안녕을 전한다.


글·사진=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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