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영광의 얼굴들] ‘문학의 봄’이 바람을 일으키며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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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에 선 2022 신춘문예 당선자들. 사진을 찍기 위해 오른 그날 부산일보사 건물 옥상에서는 바람이 불었다. 새로운 바람에 의해 그들은 항진할 것이다. 그들의 배경에 놓인 산복도로와 부산항은 누적된 삶의 풍경이었다. 그들은 저 풍경처럼 글쓰기의 각고를 누적시키며 앞으로 나아갈 터였다. 올 당선자는 50대 2명, 40대 1명, 20대 3명이다. 6명 중 5명이 문예창작과 출신이고, 1명도 글쓰기 수업을 받았다.

시 당선자 최은우
‘주변이 중심’이란 걸 발견한 뒤부터
소소한 얘기로 정곡 찌르는 시 쓰기

시 당선자 최은우(42·서울 강동구) 씨는 바이런·타고르에 심취한 고교시절 이후 1998년 문창과에 진학해 시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시와 결혼할 거’라고 다짐했다. 최종심에 몇 번 올랐으나 낙방을 거듭하면서 ‘절대 안 돼’라는 벽에 부딪혔다. 결혼 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다시 시를 쓰면서 등단하지 못해도 나중에 스스로 시집을 내자며 모든 걸 내려놓고 어깨 힘 빼고 보낸 작품이 이번에 당선됐다. “TV ‘생활의 달인’을 보며 저분들도 다른 방식, 언어, 행동으로 시를 쓰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나도 내 방식의 지극한 삶을 살 때 시에 이를 수 있겠구나, 라고 느꼈어요.” 방안 어둠 속에서 컵이 잘 안 보였는데 눈동자를 주변으로 돌리니 컵이 외려 잘 보였던 희한한 경험에서 ‘주변이 중심’이라는 발견을 한 적이 있다고. 그는 “주변이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며 “소소한 주변의 얘기로 삶의 정곡에 이르는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동화 당선자 지숙희
‘아이들마저 힘든 세상’ 건너기 위해
세상 따뜻하게 하는 동화 쓰고 싶다

아동문학(동화) 당선자 지숙희(55·부산 남구) 씨는 “다 큰 아이들 방에 들어가 본 해리포터 책의 ‘9와 4분의 3 승강장’ 장면에 얼어붙듯 멈췄다. 끝이 없는 상상의 세계에 대한 뭉클한 감동이 저를 글쓰기로 이끌었다”고 했다. 2014년부터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마법의 열차’를 탄 듯했다. 처음 2년간 책만 읽었다. 속에 있는 글들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동화의 매력은 시공을 넘나드는 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른들 눈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아이들 눈에는 신비로운 게 많아요. 아이들이 행복해지려면 좋은 동화를 많이 써야 할 거 같아요. 지금 세상은 어른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도 힘들거든요.” 그는 “ ‘아이들도 힘든 세상’에서 정말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동화를 쓰고 싶다”며 눈물을 비췄다.

시조 당선자 전영임
‘무거운 시간’ 이겨 낼 수 있었던 시조
가슴 따뜻하게 데워 주는 시조 쓸 것

시조 당선자 전영임(57·경북 영주시) 씨는 2019년부터 영주FM에서 ‘함께 걷는 문학의 숲’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동양대 사감이기도 하다. 2014년 수필로 상을 받고, 2019년 한 잡지를 통해 시조로 등단하기도 한 그의 문학적 첫발은 30대 초반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 백일장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에 자신도 백일장에 참여했는데 그만 ‘장원을 먹은’ 것이었다. “시조를 쓰게 된 것은 2017년 삶이 힘든 시절이었어요. ‘무거운 시간’을 시조 쓰면서 이겨 냈고, 지금도 시조를 쓸 때 가장 행복해요. ‘단어를 앉힐 때의 그 쾌감’은 말로 못해요.” 그는 “가볍고 밝게 공감할 수 있는 시조,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시조를 쓰고 싶다”고 했다.


단편소설 당선자 양기연
소수자와 공감하는 글 쓰는 작가될 것
변명하지 않고 인간 삶 담담하게 그릴 터

단편소설 당선자 양기연(24·충남 천안시) 씨는 문창과에 삼수해서 들어갔으나 신춘문예엔 두 번 만에 통과한 올 최연소 당선자다. 조부모 밑에서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삼촌과 ‘조숙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게 소설 쓰기의 길을 텄다. 그는 “소설은 구상이 힘들다”는 원론을 말하면서 “생각을 간결하게 정리해 작품을 쓰려면 무엇보다 솔직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만의 생각과 시선이 담긴 글”을 그는 ‘솔직함’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뭔가 풋풋했다. 이제는 그 풋풋함을 단단함으로 바꿔 나가야 할 터였다.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소수자들과 공감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그런 글을 쓰겠습니다.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고 변명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인간의 삶을 보여 주는 핑계대지 않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희곡 당선자 이도경
글쓰기는 직시해야 할 괴로운 작업
같이 살아가는 얘기 희곡에 담을 것

희곡·시나리오(희곡) 당선자 이도경(25·인천시 연수구) 씨는 TV를 거의 안 보고 독서를 많이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배경이 자연스레 “글 쓰는 게 평생의 숙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문창과로 진학했다. 희곡은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해야 하고, 보여 주는 측면이 커서 대중들과의 접근성이 큰 글이라는 특징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괴로워요. 그 괴로움을 직시해서 괴롭지만, 직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글쓰기인 거 같아요. 발을 들였으니 이제 등 돌릴 수 없어요.” 그는 소설 시 평론 등 다양한 글쓰기를 했고, 이번 당선작은 두 번째로 쓴 희곡이다. 예민한 감성의 체험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희곡은 결국 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더 나은 삶이 살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누군가와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죠. 그런 희곡을 쓸 겁니다.”

평론 당선자 최범석
평론은 예술의 가치 드러내는 밝은 눈
관객과 영화가 가까워지는 글 쓸 작정

평론(영화평론) 당선자 최범석(26·서울 성북구) 씨는 부산 출신으로 중앙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곧 한국 영화사관학교라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간다. 원래 만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림을 못 그려, 이야기 만드는 것부터 배우자며 문창과에 갔다. 교내 문학상도 받고, 한국콘텐츠진흥원 프로젝트인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다. 평소 좋아하는 감독의 고대했던 작품이 지난해 공개됐는데 이 작품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 나오지 않더라는 거다. 그래서 직접 쓴 것이 이번에 당선작이 됐다. “영화평론은 다양한 요소와 매체로 구성된 영화의 깊은 맛을 우려낼 수 있는 글이에요. 너무 좋은 영화가 얘기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평론은 그런 영화에 제대로 된 의미 부여를 하는, 예술의 가치를 발견하는 밝은 눈 같은 거죠. 관객과 영화가 가까워지는 글을 꼭 쓰고 싶습니다.”

1년에 한 사람에게만 통과가 허락되는 신춘문예 관문. 이제 그들에게 거대한 글쓰기의 벽을 어떻게 또 새로 오를 것인가, 하는 일생일대의 과제가 주어져 있다. 가능하다면 전무후무한 응원을 보낸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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