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근혜 사면, 분열·갈등 딛고 국민 통합 계기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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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는 31일 영어의 몸에서 벗어난다. 정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특별사면 결정에 따른 것이다. 사면만이 아니라 복권도 이뤄진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등의 사건으로 구속된 지 4년 9개월 만의 일이다. 문 대통령과 정부가 특사 조치에 대해 그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온 데 비춰 보면 이례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이번 특사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미진한 가운데 사면권 남용에 대한 논란과 반발이 예상되지만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을 위해 참아 달라는 당부로 들린다.

4년 9개월 만에 영어의 몸 벗어나
증오로는 해결 못 할 난제 산적해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관돼 구속됐다. 이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 등의 혐의가 추가돼 모두 징역 22년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해 왔다.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대통령’으로서 한국 정치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아직까지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사면 결정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정부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는 정도의 소감만 밝혔을 뿐이다. 사면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국민 앞에 진실한 사과를 기대했던 사람들로선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정사실이 된 이번 사면이 과도한 정치적 논란으로 이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전격적인 사면 결정에 대해 일각에선 대선을 앞두고 보수층의 표심을 노린 정치적 술수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촛불 정신’을 배신한 독선이라고 비난한다. 벌써 갈등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 특히 중요한 건 박 전 대통령의 처신이다. 박 전 대통령은 복권까지 된 상황이라 앞으로 정치 활동이 가능하다. 당분간 신병 치료에 전념한다고는 했지만 그의 첫 정치적 메시지가 무엇일지 정가에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우리 사회가 또다시 분열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앞으로 어떤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지 예측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이번 사면 조치가 화합과 새 시대 개막의 디딤돌이 돼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민 통합과 국가 미래 차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영과 정파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을 다시 정치판에 끌어들이고 대선에 활용하려는 시도 역시 삼가야 할 것이다. 사면을 받고 복권됐다고는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국정농단 범죄 자체가 용서된 것은 아니란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 앞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협과 미·중 갈등 등 분열과 증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첩첩이다. 국민 통합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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