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해운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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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환 동서대 국제물류학과 교수

올해 세계 해운시장은 유례없는 초호황기를 맞았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처음 보고돼 작년 3월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해운업계는 시황 악화를 우려했다. 그러나 2020년 하반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경기 부양,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보복 소비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중단에 따른 기업들의 재고 수요 증가로 아시아발 컨테이너 해상 물동량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반면 선사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선박 공급량 조절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공급 측면에서 임시 결항(blank sailing)과 계선(idling) 등 전략적 선대 관리로 대응함으로써 컨테이너 해상운임 폭등을 초래했다.

세계 ‘컨’ 물동량 증가로 해상운임 폭등
수출기업, 운송난과 항만 적체 시달려
해운회사 이익, 미래 대비 재투자해야
국내 선·화주 간 공생 방안 마련도 절실

한편 글로벌 공급망의 주요 거점인 항만에서는 병목 현상이 나타났다. 하역 근로자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자 지난 3월 중국 선전 얀티안터미널, 8월 닝보항이 각각 폐쇄 조치를 단행했다. 미국과 영국은 코로나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트럭 운전기사가 부족해 항만과 배후지역 간 컨테이너 내륙운송에 차질이 발생했고, 컨테이너 박스까지 부족한 상황이 겹쳐 항만 적체가 심화했다. 이에 따라 미국 LA항 앞바다에는 100여 척에 달하는 선박들이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3월 대만 선박 에버기븐호가 수에즈운하에서 좌초돼 아시아와 유럽 간 해상교역로가 6일간 폐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같은 악재들이 겹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컨테이너 물류 대란이 발생했고, 이를 두고 컨테이너와 인류 최후의 전쟁이란 뜻의 아마겟돈을 합쳐 ‘컨테이너겟돈(containergeddon)’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 같은 해상물류 대란으로 올 10월 기준 중국 상하이에서 LA까지 40피트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데 드는 운임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65%나 증가한 1만 4000달러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 주요 언론은 연일 글로벌 선사들의 어닝 서프라이즈(예상치를 뛰어넘는 깜짝 실적)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영국 해운 컨설팅 회사 드루리에 따르면 올 한 해 글로벌 해운기업들이 벌어들인 수익이 1500억 달러(한화 약 177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 20년간 선사들이 벌어들인 총수익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대표 원양선사인 HMM 역시 올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13조, 6조 원을 상회하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선사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이 수출기업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높은 운임에 시달리며 선박까지 부족한 이중고를 겪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차제에 우리 해운기업들은 화주와 장기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고, 화주는 선박을 이용할 수 있는 선·화주 공생 기반을 확립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아가 막대한 이윤을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마중물로 활용해야 한다. 해운 역사는 우리에게 불황은 길고 호황은 짧다는 교훈을 가르쳐 왔다. 현재 호황기를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는 발판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세계 최대 선사 머스크는 2050년까지 ‘탄소 제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친환경 선박 연료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한편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물류회사를 목표로 독일 항공 포워딩 업체 세나토 인터내셔널을 인수했다. 프랑스 해운기업인 CMA CGM도 항공화물 전용 법인인 CMA CGM Air Cargo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항공화물시장에 뛰어들었다. 반면 HMM은 최근 기업설명회를 통해 사상 최대 실적을 선박량 확충과 주주 배당 확대 등에 사용하겠다고 밝혀 글로벌 선사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행보를 보인다. HMM이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가 기사회생해 6년째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는 처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중장기적인 미래 전략의 부재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계 해운 시황도 올해 대량 발주된 선박들이 시장에 투입되는 2023년 이후부터는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맑은 날 우산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년은 한진해운 파산 이후 정부가 한국 해운산업 재건을 위해 수립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다.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을 통한 신조 발주 지원 등 일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부분도 있으나 선·화주 상생 방안이나 해외 항만 진출(K-GTO) 등 아직도 남은 과제가 많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의 동남아 항로 운항 선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와 HMM 매각 문제뿐만 아니라 해운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탈탄소화 등 산적한 과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새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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