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낯선 대선, 아득한 희망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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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선 정치부장

유권자로서 내 조건을 먼저 밝히는 게 정직할 것 같다. 필자는 86세대(1980년대 대학 다닌 1960년대생)와 MZ세대(1980~2000년대생) 중간에 있다. 여당도, 야당도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40대다. 월급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중산층이고, 변화와 안정에 대한 일견 모순된 기대를 품고 있다. 가장 큰 비수도권 도시에 살면서 지역의 꿈과 한계를 가끔 고민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대선은 참 낯설다. 아쉽게도 이 낯섦은 ‘참신’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일단 빅2 후보 둘 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 검찰과 공수처가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느낌이다. 국가적으로 굉장한 모험이다. 어떻게 결론 나든 선거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 같다. 유별스레 가족 리스크도 크다. 둘 다 국회 경험이 없는 것도 이례적이다. 그래서인지 두 후보에 대한 비호감 여론이 역대급이다.

집권세력 무능, 내로남불, 집값 폭등
2030 정치적 각성, 선거구도 균열

주요 후보, 리스크 속 네거티브 경쟁
PK 정치적으로 소외, 비주류화 우려

지역 이익·생존 위한 ‘스윙 스테이트’
정치세력들에 희망과 분발 메시지를


빅2 후보가 당내 ‘비주류’라는 점도 낯설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강성 친문 세력의 비토는 여전하다. 입당한 지 3개월 만에 그 자리를 차지한 윤석열 후보는 지금도 툭하면 당 대표 등과 삐걱거린다. 이 후보는 40% 안팎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에 못 미치고, 윤 후보는 50%가 넘는 정권교체 희망에 못 미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변화를 시도했다가는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계승과 차별화라는 이율배반적인 목표를 어떻게 추구하느냐가 둘의 어려운 숙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은 또다른 변수다.

이런 낯선 상황을 만든 바탕에 ‘실망’이 깔려 있다. 유권자들은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통해 권력을 쥐었지만 실망을 줬다. 국민의힘이 ‘정권교체가 곧 시대정신’이라고 호소하는 이유다. 그런데 과연 민주당의 대안이 곧 국민의힘일까. 정부의 실정에만 기댄 채, 구태의연함으로 실망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윤 후보의 지지도가 왜 정권교체율에 못 미칠까. 이 후보가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선은 미래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승리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선거는 누구에게 권력을 ‘주지 않을지’ 선택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국민적 실망을 어떻게 희망으로 바꾸느냐에 승부가 갈릴 것이다.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고 하지 않던가.

올해 대선에서 또 하나 낯선 것은 2030 유권자의 부상이다. 대개 젊을수록 진보, 나이가 많을수록 보수 경향을 보인다. 이런 통념에 균열이 생겼다. 젊은이들이 실용적이고 전략적으로 변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과 내로남불, 집값 폭등에 실망해 정치적으로 눈을 뜬 결과다. 이런 틈을 놓치지 않고, 1985년생 이준석을 국민의힘 당대표로 뽑은 것은 보수의 노련함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약한 당내 기반 탓인지 자꾸 흔들리는 모습이다.

‘세대 갈라치기’라는 비판이 있긴 하다. 정치의 목표가 사회통합인 점을 생각할 때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같은 잣대로 2030의 고민과 불만에 둔감했던 것 또한 반성할 일이다. 2030은 86세대를 기득권 집단으로 인식한다. 어쨌든 균열 덕에 민주당은 ‘집토끼’를 지키려고, 국민의힘은 ‘산토끼’를 잡으려고 구애에 한창이다. 그러나 영리한 토끼처럼 쉽게 마음을 안 준다. 2030은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이다.

PK로 눈을 돌려보자. 1990년 3당합당 이후 PK는 보수의 아성이었다. 인구구조를 볼 때 보수화 압박은 가중된다. 1995년을 정점(388만 명)으로 부산 인구는 내리막길이다. 경남·울산도 2010년대 중반부터 감소한다. PK 유권자들이 비(非) 보수정당에 마음을 연 것은 기껏해야 2016년 총선부터다. 그러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정반대의 쏠림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극단적 ‘편식’이다.

앞으로 PK의 정치적 위상은 예전만 못할 공산이 있다. 주요 대선후보는 PK와 별 관계가 없다. 당장 이번 대선에서 원전 이슈가 주요 정당에서 외면받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허전함 또한 낯선 것이다. 비주류가 사는 방법은 두 가지다. 포기하거나, 좀 더 영리해지거나.

PK는 2030에게 배워야 한다. 유권자 소외를 피하려면 ‘스윙 스테이트’가 돼야 한다. 최근 선거에서 부산 투표자 중 40만 명, 경남·울산까지 넓히면 60만~100만 명이 그네 타듯 당을 오갔다. 가덕신공항, 엑스포, 북항재개발, 메가시티 등의 추진동력은 거기에서 나온다. 전국정당화를 꾀하는 민주당 입장에서 TK(대구·경북)보다 PK 공략이 쉽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전통적 ‘집토끼’를 모아야 한다. 정치적 소수에게는 희망을 주고, 다수에게는 분발을 촉구하는 균형감이 시민들에게 필요하다. PK는 정치적으로 ‘다이내믹’해져야 한다.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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