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희곡] 22면서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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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여자의 어깨를 옆으로 밀고는 방 안으로 들어온다. 여자는 황급히 테이블을 가려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주인 (문 뒤를 가리키며) 두 명 맞지?



문 뒤에 숨어 서 있던 남자가 벽에 기대 주저앉는다. 조용히 문이 닫히며 소리가 난다.



주인 혼자 산다고 해서 장기투숙 더 싸게 받았는데!

여자 같이 사는 거 아니에요. 자고 가는 것도 아니고.

주인 아까 내가 옆방 대실 끝나고 정리하면서 다 들었는데 뭘.

여자 대체 뭘요?

주인 데이트 어쩌고 얘기하는 거!



(사이)



여자는 조용히 머리를 쓸어넘기며 남자에게 다가간다. 남자를 붙잡아 일으켜 세운다.



여자 그쪽이 말 좀 해 봐요. 우리 오늘 처음 본 사이인 거.

주인 처음 봤는데 모텔에… 같이…?

남자 (두 손을 내저으며)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여자 그냥 밥만 먹으러 온 거예요.



주인은 두 남녀를 번갈아보더니 팔짱을 낀다.



주인 다들 손만 잡고 들어오자고 해 놓고 할 거 다 하는 데가 여긴데 뭘 아니래?

여자, 남자 (서로 멀리 떨어지며) 진짜 아니에요.

주인 그래. 아니어도 알 바 아니지. 근데 아가씨는 규칙을 어겼어.

여자 모텔에 규칙이 어딨어요?

주인 여긴 내 모텔이야.

남자 잘 치워놓고 갈 거예요. 제가 나가면서 쓰레기 다 버릴 거고요.

주인 먹는 거 말고. 여기서 삼겹살 구워먹는 애들도 있었어.

여자 그럼 규칙이 대체 뭔데요…?

주인 인원 추가 금액 안 받는 모텔이 어딨어?



여자는 당황해 남자를 돌아본다. 남자는 주인을 바라보고, 주인은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 잠깐이고, 아무것도 안 하고 밥만 먹은 건데요?

주인 (팔짱을 끼며) 들어와서 앉아만 있다가 가도 방을 빌리는 건 똑같지!

여자 (주인의 팔에 매달리며)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그 사이 남자는 조용히 방에서 나가려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주인, 여자의 노려봄에 다시 문을 닫는다.



주인 월세에서 30분의 1만 더 받아야겠어.

여자 그럼 얼마를 더…?

주인 2만 5000원만 더 받을게 아가씨.

여자 30분의 1에다가, 2만 5000원까지 더하면 그냥 하루치 숙박인데….

남자 사장님, 그럼 반이라도, 저 자정 넘어서 들어왔어요.

주인 자정 넘으면 대실도 안 돼. 무조건 숙박이야.



(사이)



여자 우리 반반씩 내기로 해요 그럼.

남자 나요?

여자 네. 그쪽이 있어서 더 내는 거잖아요.

남자 아니, 당신이 사는 데인데 내가 왜?

여자 그쪽이 있으니까 내가 걸린 거죠.

남자 애초에 모텔이 아니라 다른 데서 살면 이런 일도 없었지.

여자 좋단다고 따라 온 그쪽이 할 말도 아니죠.



주인, 짝다리를 짚고 다리를 떨다가 여자 뒤편으로 보이는 음식들을 흘겨본다. 여자는 두 팔로 가리려 애쓰다가 자신의 지갑을 연다. 2만 5000원을 주인에게 건넨다. 주인은 돈을 확인하고, 냄새가 난다는 듯 두 손을 휘젓는다.



여자 음식도 안 먹을게요. 먹은 건 한 번이에요.

주인 아가씨. 먹고 싶으면 먹어요. 사람이 다 먹고 살자고 이러는 거지. 너무 야박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자 다 배부르자고 이러는 거잖아요.

주인 그래요들. 총각은 내일까지 있겠다고 하면 두 배 되는 건 알지?



주인, 문 밖으로 퇴장한다. 문이 닫히기 직전 남자는 고개를 쭉 내밀고는 중얼거린다.



남자 저렇게 배불리 살면 손가락질이나 당하지, 인정머리 없는 인간!

그때 주인 다시 들어와 인사한다. 남자는 놀라 자리에 주저앉는다.



주인 아, 아가씨 화장실에서 토하는 건 괜찮은데, 위층에서 냄새 올라온다고 전화 왔어. 이따가 락스 좀 부어 둬.



주인, 다시 퇴장한다. 남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한다. 어느새 침대에 앉아있다.



남자 놀라서 체하겠다.

여자 아까 2만 5000원이었으니까, 그냥 만 원만 줘요.

남자 만 원?

여자 원래는 만 2500원인데 만 원만 받을게요.

남자 (자리에서 일어나) 아니, 먼저 같이 더 먹자고 한 건 당신 아닌가?

여자 그쪽만 아니었어도 난 문제 없이 여기서 잘 살아요.

남자 아까 낸 돈도 처음부터 내가 준 거였는데?

여자 준 게 아니라 나한테 산 거죠 정확히 말하면.

남자 겨우 만 원 가지고 구차하게 이래요?



여자, 지끈거린다는 듯 한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여자 그 만 원 없어서 우리가 이러고 사는 거 아닌가요?

남자 우리라뇨. 저는 달방 살지는 않아요.

여자 솔직히 말할게요.

남자 뭘?



(사이)



여자 솔직히. 뷔페에서 남은 음식 싸가는 사람 우리 말고 본 적 있어요?



여자와 남자는 서로 눈을 마주치다가 객석을 바라본다.



여자 (객석을 향해) 있어요? 당신도 아까 싸갔잖아요. 당신은 집에서 먹을 거라면서….

남자 남들은 우리한테 관심도 없다니까.

여자 정말 모를 것 같아요? 우리가 몰래 음식 담는 걸.

남자 알아도 모른척 하는 게 사람이죠. 정말 모를 수도 있고.

여자 아니요. 사실,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할 거예요.

남자 무슨?

여자 아, 이거 집에 싸가고 싶다 하는 걸. 어쩌면 다들 우리가 몰래 음식 싸 오는 용기가 부럽다고 생각할지도. 그래봤자 사실 관심도 없겠지만.



여자,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남자 배 안불러요?

여자 뷔페는 배 부르자고 가는 곳인데, 왜…?

남자 아직도?

여자 왜 계속 배가 고프죠?

남자 생각보다 고프게 살아요 다들. 다만 남이 뭐가 고픈지 관심이 없는 거지.



여자,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먹는다. 남자는 옆에서 그런 여자의 행동을 제지한다.



여자 토할 것 같아요. 근데 계속 배가 고파서….



남자, 여자의 등을 두드려준다.



남자 나도 고픈 게 있어요. 여자랑 데이트나, 손 잡아 보는 거나, 스킨십 같은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서. 죽을 때는 누가 꼭 같이 있어야 하잖아요?

여자 죽을 때… 누군가 같이 있어준다는 건, 축복인 것 같긴 해요. 근데 저는… 그쪽 여기 데려온 거,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남자 알아요. 그냥 밥만 먹자는 거. 손만 잡고 뭘 하자 이런 것도 아닌 거.

여자 한 번도?

남자 한 번도. 솔직히 기대는 좀 했어요.

여자 미안해요. 아니 미안할 건 아니지만….

남자 마저 먹어요. 그리고 아까 만 원, 그건 제가 줄게요.

여자 됐어요.



남자, 자신의 외투를 향해 일어난다.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돈을 꺼낸다. 전부 천 원짜리다.



남자 이게 다예요.



남자, 여자에게 돈을 건네보지만 여자는 받지 않는다.



여자 이거 다 해도 만 원 안 될 텐데.

남자 그나마 이뿐이라.

여자 뷔페 식사권 팔았던 거, 그걸로 냈어요.

남자 받아요.

여자 이것밖에 없는데 왜 꼭 뷔페를 갔어요?

남자 언젠가라도 여자 만나면, 좋은 데서 밥 먹을 테니까 연습하려고.



여자, 남자가 건넨 돈을 받는다. 가만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여자 토할 것 같아요.

남자 그만큼 먹었으니….



여자는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남자는 따라가 문 앞에 서 있는다. 곧 여자가 토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는 이번엔 음악을 트는 대신 적나라한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문을 열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여자의 등을 두드려준다. 등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 (음성만) 괜찮아요?

여자 (음성만) 익숙해요.



구토 소리가 멎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둘. 여자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고 있고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살짝 매만지고 있다. 여자는 습관적으로 테이블 위 음식을 하나 집어먹고는 침대에 눕는다.



여자 (작게 중얼거리며) 습관이에요. 먹는 것도.

남자 모르는 사람 데려다 놓고 밥 먹는 것도?

여자 어지러워요.

남자 좀 자요 차라리. 난 갈 테니까.

여자 이제야 좀 배가 부르는 것 같아요.



남자, 조용히 여자의 등을 두드려준다.



여자 차 끊겼을 텐데. 집이 어디라고 했죠?

남자 의정부. 첫차 두 시간 남았어요.

여자 자고 가요. 잠만.

남자 됐어요. 그쪽 자면 갈 거예요. 여자랑 모텔은 처음 와 보네, 그래도.

여자 우리 이제 안 볼 사이인데.

남자 알아요.

여자 숨이 막히는 것 같아요.



여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인다. 입을 벌리고 손가락을 넣는다.



남자 화장실 가서 토해요.

여자 체한 것 같아, 숨이….



남자, 여자의 등을 두드리지만 소용이 없다. 여자는 계속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다.



여자 헉, 숨이 헉.



남자, 여자의 허리를 두 팔로 붙잡고 꽉 끌어안다가 놓기를 반복한다.



남자 지금도?



여자는 남자의 손을 제지하고 바닥에 넘어진다.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토하려해 보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고통에 찬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모텔 옆 방에서 시끄럽다는 듯 벽을 두드리기도 한다. 남자는 기어이 여자를 들기까지 하고 여자는 구토한다.



남자 괜찮아요?



여자,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아 말없이 울기 시작한다.



남자 치우면 돼요. 죽을뻔 했다고요 방금!



계속 들려오는 여자 울음소리. 자신의 어깨와 등을 두드리는 남자의 손을 붙잡는 여자.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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