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자화상 100여 점은 늙어감을 그린 자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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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 오직 하나뿐인 그대 / 이미혜

인간은 저마다 정해진 시간을 소진하면 삶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유한한 존재다. 시간의 흐름은 무한하고 쏜살같다. 하지만 유한한 삶이 예술을 만나면 무한한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언어, 이미지, 음악을 통해 삶에 불멸의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행복했던 시간을 되새기고 쓰라렸던 과거를 어루만지며 이제 여기 있지 않은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기도 한다. 특히 초상화에는 한때 이 세상에 머물면서 행복과 고통을 맛보고 꿈과 욕망을 뒤쫓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순간을 기록하려는 욕망 담긴 초상화
가려 뽑은 159점 통해 온갖 일화 소개

초상화는 인물화 중에서 대상을 ‘누구’라고 특정한 그림을 말한다. 초상화는 회화의 장르 중 작품 수가 가장 많다. 르네상스 시대에 독립적 장르로 성립된 후 20세기에 들어와 사진에 밀려날 때까지 초상화는 수 세기 동안 인간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했다. 왕과 귀족들은 초상화를 통해 권력과 지위를 과시했고, 부자들은 부와 능력을 자랑했으며, 미인들은 아름다움을 뽐냈다.

초상화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영화롭고 행복했던 시절,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순간을 기록하려는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초상화에는 다양한 인물의 모습이 담긴 만큼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도 다양하다.

<초상화-오직 하나뿐인 그대>는 초상화를 통해 한 인간과 그가 살았던 시대, 예술사와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초상화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이 책은 예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예술가 자신을 비롯해 모델, 예술에 영향을 미친 권력자, 예술수집가 등의 초상화 159점을 만날 수 있다. 초상화 그림 감상과 함께 초상화 속 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와 관습을 담은 다양한 일화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는 자화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무려 백여 점이나 되는 자화상을 그렸다. 처음에는 초상화가로서 인물 표정을 연구하기 위해 그렸으나 시간이 갈수록 자화상은 자신의 늙어감과 몰락을 담담하게 기록하는 도구로 변해갔다. 즉 그림으로 쓴 자서전인 셈이다.’

이 책은 초상화를 다섯 종류로 분류해 소개한다. 예술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 예술가와 가장 가까이 있는 모델, 삶의 동반자인 부부, 사회를 지배한 권력자, 예술 발전에 영향을 미친 수집가와 미술상. 각 장에 속한 초상화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치했다. 시대별로 어떤 인물이 부각되고,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자연스레 짐작할 수 있다. 예술사의 발전과정도 엿볼 수 있다.

저자 이미혜는 울산대, 경성대, 부경대 등에서 불문학과 예술 사회사를 가르쳤다. 문학, 미술, 영화 등을 포함한 예술 현상을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저술 활동도 활발하다. <예술의 사회경제사> <이미혜의 그림읽기> <사랑의 예술사> <예술과 경제>(공저) <예술의 역사>(공저) <이미지의 시대>(공저)를 선보였다. 장편소설 <사라진 서재>, 자녀 교육서 <아이를 살리는 공부 아이를 죽이는 공부>도 펴냈다. 이미혜 지음/북팔/464쪽/2만 4000원. 천영철 기자 c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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