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주인은 인간 아닌 수중생물… 해양보호구역 늘려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명정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자문위원

“지구가 한계에 이르기 전에 지켜야 합니다. 철저하게 보호되는 해양보호구역도 늘려나가야겠지요. 어쩌면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수중 생물이니까요.” 명정구 박사가 명쾌하게 말했다.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을 펴낸 명 박사를 최근 부산 영도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명 박사는 지난해 연말 퇴임 후 해양생물자원연구단 자문위원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반도 바닷물고기 대도감’ 출간
‘롯데출판문화대상’서 대상 받아
25년 간 낸 논문 총정리, 연구 계속

명 박사는 인간에게는 조금 죄송한 말씀을 드릴 수도 있다고 먼저 양해를 구했다. “지구 면적의 70.8%가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물이 사는 공간으로 보면 아마 95% 이상이 물 속일 것입니다. 수중에 사는 생물로는 물고기가 가장 분화한 그룹입니다.” 명 박사는 우리나라 연안 환경이 육상에서 사는 인간들 중심으로 개발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서해안 해안선 길이가 간척사업으로 40% 이상 사라졌다는 것이다.

“서해안이나 남해안의 갯벌은 바닷물이 들어올 때 수많은 어린 해양생물과 물고기가 따라 들어와 먹이를 찾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으로 보면 되는데, 갯벌이 사라진 것은 물고기의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어릴 적 자갈치 앞바다에서 꼬시래기(망둑어의 부산 방언)를 잡으며 자랐던 명 박사는 삼촌으로부터 낚시를 배웠다. 바다를 좋아하는 어린 아들을 어머니가 극장에 데리고 가서 보여준 ‘태양이 닿지 않는 세계’ ‘해저의 생과 사’ 같은 해양 다큐멘터리에 푹 빠져 인생의 길을 정했다.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를 연구하고 사랑하기로 한 것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선생님이 물고기는 알을 낳는다고 가르쳤다. 명 박사는 삼촌이 잡아 온 망상어는 새끼를 낳는 것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명 박사는 나중에 커서 태생(새끼를 낳는) 물고기가 있다는 걸 학술적으로 확인했다. 부산 수산대학교에 들어간 명 박사는 1977년 외국 유학을 다녀왔던 은사로부터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다. 그때 배운 스쿠버는 지금도 연구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한국에 스쿠버다이빙 교육 단체가 없던 당시 스쿠버다이빙을 배운 덕분에 연구원을 하며 한국형 바다목장 모델도 고안했고, 20여 년간 독도 수중탐사를 하며 생태지도도 그릴 수 있었지요.” 명 박사는 2016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수중연맹총회 가서 같은 해 울릉도 독도 국제초청수중촬영대회 참가 국제 선수를 유치했다.

“직접 탐사해 그린 12개의 독도 수중생태지도를 보여주며 대회를 치렀습니다.” 명 박사는 해외 14개국 선수와 우리나라 선수가 참가해 열린 대회 결과를 회원국 124개국에 알리며 독도와 동해가 영문으로 표기된 자료집을 보낸 것은 지금도 뿌듯하다고 말했다. 해양 생물학자가 민간 외교관의 역할도 한 것이다.

수심 44m까지 잠수 경험이 있는 명 박사는 요즘도 독도와 통영 바다목장 조사를 가면 다이빙을 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에서 연수 중인 아들 명세훈 박사도 아버지를 닮아 다이빙 전문가다. 아들과는 멀리 갈라파고스, 말레이시아 시파단, 독도 등지에서 해양 연구 조사를 함께 했다.

요즘 부산 송도 앞바다에 들어가면 망상어의 혼인색을 볼 수 있다고 명 박사 알려주었다. 물 밖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혼인색인데, 몸빛이 한껏 짙어진 수컷 측면에 흰 반점 두 개가 뚜렷하다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현장에 충실한 학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바닷속에 사는 생물 중 멍게는 표면에 부착물이 전혀 없어 멍게 피부 메커니즘을 잘 연구하면 선박 밑바닥에 칠하는 방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늘 생각하면서 과학 잠수를 해 온 명 박사는 올 초까지 십여 년간 한국수중과학회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명 박사는 한국수중과학회 회원인 화가와 함께 만든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으로 최근 롯데출판문화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명 박사는 “25여 년간 연구한 논문 등을 총정리한 책이지만 이제 시작”이라며 1000종의 한국 연안 어류 중 528종을 집성했지만 한반도 어류도감은 어종과 그림을 추가하고 이북 바다까지 조사해야 완성된다고 겸손해했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