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돈이 제일 똥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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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경제부 유통관광팀장

술자리에서 '돈이 제일 똥값'이라는 농을 듣고는 박장대소했습니다. 그만큼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점심 한 끼 해결하려고 찾은 단골집 돼지국밥 가격이 어느새 8⑫000원을 넘어섰더군요. 외근 혼밥 메뉴인 햄버거도 더는 '가성비 식사'가 아니고요.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물가안정 목표인 2%를 훌쩍 넘을 전망입니다. 2012년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랍니다. 더 불행한 건 내년에도 이 상승률은 이어질 거라는 점이죠.

연초부터 이어진 물가 상승은 기름값과 농축산물 가격이 이끌고 있습니다. 기름값이야 유류세 인하로 당장 급한 불을 껐습니다만, 장바구니 물가는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는 모양입니다.

연말연시 돈 나갈 구멍이 많아 외식 대신 집밥을 차리자 싶어 주말 장을 보러갔습니다. 겨울이 제철인 대구탕이나 끓여줄까 싶어 만만한 두부를 한 모 들었더니, 세상에 4000원이랍니다. 대구까지 한 마리 장만해서 넣으니 이건 직접 차리는 거나, 외식하는 거나 차이도 없겠다 싶어 허탈해졌습니다.

올 초부터 장 보러 갔다가 깜짝깜짝 놀란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또 세계적인 흐름인 건 압니다. 1년 넘게 코로나 팬데믹에 맞서 경기부양을 하겠다며 그리도 돈을 풀어댔으니 시중에 돈이 흘러넘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 정부의 대응 방식에 쌓여가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네요.

일단 연초부터 고공행진하는 물가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부터 불안합니다. 요소수 때처럼 공급 충격으로 인한 단기 상승 정도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내놓는 대책도 부처별로 돌아가며 반발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정부는 내년 총지출 규모를 600조 넘게 늘리겠다며 팔을 걷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되레 가계대출이 걱정된다며 금리 인상의 고삐를 조이겠답니다. 이자 상환 부담에 줄줄이 지갑을 닫을 게 뻔한데 지출 규모를 늘리는 건 또 무슨 의미가 있답니까.

한때 온라인에서 '명예로운 죽음'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제 실수로 망할 판이었는데 절묘하게 핑곗거리가 생겨서 실패가 고급지게 포장되는 걸 비웃는 말이죠.

물가는 연일 뛰는데 한 쪽에서는 풀겠다고, 또 한 쪽에서는 조이겠다고 합니다. 이쯤되면 기재부를 비롯해 정부 부처가 단체로 '코로나 명예사'를 선택했나 하는 의심마저 듭니다. 여당에서 돈 풀라고 압박하면 울먹이며 반기를 드는 듯 하다 다음 날이면 체념했다는 듯 따라가는 경제부총리의 무소신 행보에 의심은 더해집니다.

허나, 그건 안될 말이지요. 본인들이야 '세계적인 위기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한 마디면 끝날 일이지만 서민 가정은 그래도 삶을 이어나가야 하니까요.

한 번 오른 물가가 쉽게 내리지 않는다는 건 삼척동자도 압니다. 엄중한 시국이라면 엄정한 행정을 보여주세요. '가격표 서프라이즈'에 혀를 차는 두 아이 아빠의 간곡한 바람입니다. 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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