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음모가 승리했던 발자크 시대, 그렇다면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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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송기정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시간과 변화의 빠른 물살이 느껴진다. 우리 당대는 소설가들의 ‘위대한 포착’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아닌가. 모호하고 불투명한 시대적 기운이 느껴진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만 우리는 그게 뭔지 알고나 있을까.

발자크 소설 속 옛 파리는 ‘괴물’로 묘사
우리가 사는 시대, 이곳은 ‘괴물’ 아닐까


자신의 당대를 남김없이 포착해 ‘리얼리즘의 승리’를 구가한 발자크. 의 부제는 ‘세기의 창조자’다. 30년간 발자크를 연구한 이화여대 교수의 저작이다. 발자크 연대는 1799~1859년. 거의 우리 당대에서 2세기를 거슬러오른다. 발자크의 시대는, 우리 시대 이상으로 변혁기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19세기에 7번이나 정치체제가 바뀌었다. 그 시대를 발자크는 어떻게 미끄러지면서 견뎠을까. 그가 방대한 작품을 썼던 것은 빚 때문이었다. 사치, 낭비, 부동산 투기, 사업 실패 따위로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집중해서 글을 써댔다. 살기 위해 썼다. 20년간 바짝 쓰고 죽었는데 하루 16시간 썼고, 글쓰기의 각성을 위해 평생 5만 잔의 커피를 마셨다. 과도한 글쓰기와 커피 때문에 그는 51세에 죽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돈을 사랑했고, 또 증오했다고 한다. 그가 그린 세계는 권선징악의 세계가 아니다. 금융 사기꾼이 최고 부자가 되고, 권력과 결탁한 법관이 출세하는 세계다. 거짓과 음모가 승리하고 진실과 순수는 패하는 세계다. 근대소설이 발자크에서 시작됐다면 아직도 우리는 거짓과 위선 기만이 암약하는 근대의 연장선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발자크 소설에서는 옛 파리 모습이 살아 숨 쉰다고 한다. 빚쟁이들에 쫓겨 다니면서 이곳저곳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체험 속에서 발자크는 ‘파리는 완벽한 괴물이다’라는 명제를 내놓는다. 우리가 사는 시대, 이곳은 괴물이 아닐 것인가.

발자크는 정치적으로도 모순투성이였다. 젊었을 때는 대혁명의 의미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자였으나, 나중에는 보수주의자가 돼 평등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7월 왕정이 들어서자 또 변심해 귀족계급이 무너지고 황금 만능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저자는 “그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고자 했으며 보수도 진보도 아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며 발자크 편을 든다.

발자크의 유년은 불행했다.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32살이나 적었으며, 태어나자마자 시골 유모에게 맡겨져 젊은 엄마에게서 버림 받았다는 감정을 지녔다. 그는 “내 어머니는 내 삶에서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 콤플렉스를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독서를 했고, 그 허기를 메우기 위해 돈을 탐했으나 결국 그는 글을 썼던 것이다. 저자는 “한 인간의 실패가 위대한 발자크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2500명이 나오는 90여 편 소설로 이뤄진 그의 총서는 역사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예술 법 등 19세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백과사전’이다.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인간의 위대한 실패를 구현하는 인물, 작가가 나올 수 있을까. 모순으로 점철된 발자크의 시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송기정 지음/페이퍼로드/432쪽/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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