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핵폐기장 출구 없는 친원전, 가당키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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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특별법)’의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 소위 상정이 일단 불발되었다. 국내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인 부산·울산에서는 이 법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다. 새로 도입된 ‘부지 내 저장시설’ 조항에 따라 원전사업자인 한수원이 자의적으로 부지 내 저장시설을 증설할 수 있게 되고, 원전은 사실상의 영구처분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역주민과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없이 부산·울산을 핵폐기장화하려는 시도의 일단 멈춤이 다행스럽다고 하겠다.

고준위특별법 국회 상정 불발 다행
사용후핵연료 해결 방법부터 내놔야

고준위특별법은 여당이 특별법 추진을 앞에서 이끌고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의 중장기 로드맵에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을 명문화하면서 뒤에서 받치는 모양새였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고준위특별법을 추진하는 데 대해 다양한 해석도 나오고 있다. 어찌 되었든 수십 년째 핵폐기장 마련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체부지 마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탈원전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원전의 위험에 더해 맹독성 강한 핵폐기물까지 지역에 떠안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탈원전과는 정반대로 가거나 차별화하겠다는 여야 유력 대선 후보들의 발언도 우려스럽다. 친원전 인사들에 둘러싸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탈원전을 비판하며 원전 육성 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습이다. 윤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중단된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강경한 탈원전주의자에서 탈원전에 비판적인 모습으로 너무나 달라졌다. 대선 승리를 위해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치자. 그래도 윤 후보의 “외국에서도 안전한 기술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장래에는 큰 문제가 없지 않는가”라는 식의 인식은 안일하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원전 폐기물을 전부 우주, 어디 달에 가서 파묻는 기술도 발전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발언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원전은 모두 지방에 있으니 서울에 앉아 원전 정책을 너무 쉽게 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전은 많이 몰릴수록 위험이 커지고,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단지가 고리원전이다. 원자로 수가 총 9기에 달하는 고리원전 반경 30㎞ 내에 거주하는 인구는 382만 명에 달한다. 지진이 났다는 소식만 들으면 부산·울산 시민들은 원전부터 떠올린다. 부산·울산이 영구 핵폐기장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핵폐기장이라는 출구가 없는 친원전은 가당치 않다. 친원전을 주장하려면 사용후핵연료를 해결할 방법을 먼저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의 “소모적인 탈원전 논쟁을 중단하고 50만 다발이나 쌓여 있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 방안부터 토론하자”는 주장에 백분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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