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치고 달리기] 눈치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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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부 기자

참담했다. 프로축구 경기가 열리는 곳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잔디는 곳곳이 누렇게 떠 있었고 울퉁불퉁했다. 코너킥을 차야 할 네 모서리는 오르막이 져 있었다. 관중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부석을 제외한 관중석 의자 대부분은 깨져 있었다.

부산 서구 구덕운동장의 이야기다. 한국프로축구 K리그2 부산 아이파크와 K3리그 부산교통공사가 홈구장인 곳이다. 이달 초 둘러본 구덕운동장은 선수·관중·관리자 누구 하나 만족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이를 아는 듯 부산시는 2022년 구덕운동장 개·보수 계획을 발표했다. 예산은 37억 원이다. 썩어버린 잔디 대신 새 잔디를 깔고, 관람석 의자도 교체한다. 녹물이 나오는 낡은 배관도 바꾼다. 환영할 일이다.

올 한 해 부산 프로스포츠 팀들은 팬들의 기대에 화답하지 못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부산 아이파크는 K리그1에 진출하지 못했다. 남자프로농구 KT는 부산을 빠져나갔다.

부산 프로스포츠는 왜 성공하지 못하는가. 이유는 복합적이다. 경기장 여건 개선은 프로 스포츠 성장의 충분 조건은 아닐지언정, 필요 조건임은 분명하다. 부산의 경기장 여건이 바뀌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는 개선 비용 마련을 둘러싼 ‘임대인’ 부산시와 ‘임차인’ 프로구단의 끝없는 눈치싸움이다. 어느 한 쪽도 선뜻 발걸음을 떼려 하지 않는다. 그동안 경기장은 낡아가고 있고, 부산시민들은 프로스포츠를 떠나고 있다.

대구의 상황은 부산과 매우 대조적이다. 대구는 2016년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야구)와 2019년 DGB대구은행파크(축구)가 개장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올 시즌 2위에 올라 가을야구를 펼쳤다. K리그1 대구FC는 3위에 올랐다. 개선된 경기장 여건은 선수와 관중, 지자체가 똘똘 뭉치는 데 큰 힘이 됐다. 어느샌가 대구는 프로스포츠 선수와 팬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은 도시가 됐다.

부산시와 프로 구단 모두 바뀌어야 할 때다. 부산시는 더 이상 선거 때마다 경기장 개선 사업이 오락가락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경기장 여건 개선은 후보들의 공약 대상이 아니다. 프로 구단들 역시 달라져야 한다. 부산시의 지원에만 목매지 않고 선제적으로 과감한 투자 발걸음을 떼야 한다. 부산은 대한축구협회장이 구단주인 프로축구단을 보유한 도시 아닌가. 이번 구덕운동장의 개·보수 사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부산시민들은 오래 전부터 환호성을 지를 준비를 마쳤다. 이젠 부산시와 프로구단이 응답해야 할 때다.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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