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말고 진해, 겨울 여좌동 걷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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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도 벚꽃이 핀다 그런데 진해에선 벚꽃 없는 풍경도 곱다

12월 진해에 벚꽃이 피었다. 봄가을 두 번 피는 춘추벚이다. 앙상한 가지마다 벚꽃 한두 송이가 매달려 있다. 그래서인지 꽃송이 하나하나에 더 눈길이 간다. 진해의 곳곳도 그렇다. 화려한 벚꽃을 걷어내고 들여다보면 다른 매력이 가득하다. 장복산 아래 오래된 마을 여좌동에서 ‘벚꽃 말고 진해’를 만났다.

겨울에도 피는 춘추벚이 반기는 진해내수면생태환경공원
저수지와 나란히 걷는 산책길은 멈추는 곳이 바로 포토존

벚꽃 없는 여좌천 걷기는 아늑한 동네 풍경의 재발견 기쁨
12개 다리 스탬프 찍기 행사부터 야경 축제까지 별난 재미


■진해내수면생태환경공원

규모는 작지만 알차다. 시민에게 관광객에게 사계절 내내 사랑받는 곳이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내수면생태환경공원은 진해 남부내수면연구소 안에 있다. 1929년 일제강점기 때 진해양어장으로 조성됐다가, 1985년 국립수산진흥원 진해내수면연구소가 됐다. 내수면 양식기술을 개발하고 양식어종 등을 연구하고 있다. 2008년에 면적 8만 3897㎡를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개방했다. 생태관찰로와 덱 등 저수지 주변에 산책로를 만들고 8140㎡는 습지공원으로 조성했다. 공원에는 4000여 종의 수목이 자라고 있으며, 저수지 물은 연구소 수산생물의 사육수로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깨끗한 수질을 위해 음식물 반입은 금지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춘추벚이 반겨 준다. 공원 관계자는 “지금 피어 있는 벚꽃은 겨우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습지관찰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저수지관찰길이다. 습지관찰길로 먼저 들어섰다. 습지를 둘러싸고 있는 길에는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 푹신푹신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다. 마스크를 뚫고 상쾌한 숲 공기가 전해진다. 발길이 절로 느려진다.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가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키 큰 대나무 사이로 사그락사그락 맑은 바람이 상쾌하다. 쓰러진 채 그대로 누워 있는 고사목은 그야말로 ‘자연’스럽다.

저수지관찰길은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한 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저수지를 왼쪽에 두고 걸으면 된다. 오른쪽으론 숲이 펼쳐졌다가 이내 나무 터널이 이어진다. 저수지와 숲 사잇길을 걷는 일은 힐링 그 자체다. 이곳에서 이어폰은 잠시 빼 둬도 좋겠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가 훌륭한 배경음악이다. 걷다 보면, 왜 여기가 사진작가들이 뽑은 사진 명소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물가로 어깨를 드리운 느티나무·팽나무·왕버들 등 고목들 사이로, 하늘과 산과 나무를 제대로 ‘반영’하는 저수지가 펼쳐진다. 발걸음 멈추는 곳이 바로 포토존이다. 산책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연구소의 양어장도 이색적이다.

여좌천과 나란히 걷는 구간은 늦가을의 하이라이트였다. 붉은 단풍나무가 줄지어 서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단풍은 거의 다 잎을 떨구었지만, 떨어진 잎은 가을의 흔적을 밟는 낭만을 남기고 있다. 이 길에는 저수지 쪽으로 키 큰 나무가 없어 시원하게 저수지를 볼 수 있다. 산이 통째로 물에 담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인공섬 앞 전망대 덱 아래는 팔뚝 만한 잉어들의 놀이터이다. 어린아이들이 자리를 뜨지 못하는 핫플. 먹이 주기는 절대 금지다.

저수지관찰길은 길이 650m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멈추지 않고 한 바퀴를 쭉 돌았다면 두 바퀴째는 중간중간 놓인 벤치나 그네의자에 앉아 보자. 고개를 들면 하늘멍·산멍에 빠질 수 있고, 시선을 낮추면 물멍과 물에 빠진 산멍을 즐길 수 있다. 시간이 멈춘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스탬프 찍고 여좌천 걷기

내수면생태환경공원을 나오면 바로 앞으로 여좌천이 흐른다. 여좌천은 여좌동에서 충무동을 거쳐 진해만으로 흐르는 지방하천이다. 1910년께 일제가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물길을 직선화하고 둑 위에 벚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진해 벚꽃’ 하면 하천을 사이에 둔 연분홍 벚꽃 터널이 떠오를 것이다. 그 주인공이 여좌천이다. 벚꽃이 없는 여좌천은 허전하지만 오히려 걷기엔 쏠쏠한 재미가 있다. 벚꽃이 피었을 땐 인파에 묻혀 있던 아늑한 동네 풍경이 보인다. 여좌천 덱의 길이는 왕복 약 3km, 느긋하게 걸으면 1시간쯤 걸린다.

마침 걷는 재미를 더해 줄 ‘힐링 여좌천 스탬프 투어’가 열리고 있다. 여좌천에 놓인 12개 다리에서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작은 기념품을 준다. 스탬프 카드는 걷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뛰게 하는 마법의 카드가 된다. 내수면생태환경공원 바로 맞은편 생태관광 에코힐링센터에서 지도와 스탬프를 찍을 12장의 카드를 받을 수 있다. 센터 바로 앞쪽이 11교이니, 12교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12교부터 1교까지 내려가면서 스탬프를 찍으면 된다. 절반을 먼저 걷고 1교부터 순서대로 찍어도 좋다. 스탬프는 프레스 기계로 다리 이름을 볼록하게 새기는 방식이라 ‘감성’이 느껴진다. 달비치, 해오름, 여명, 로망스 등 12개 다리의 이름을 읽어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11교에서 6교까지는 덱길 아래 도보길로 걸을 수 있다. 이끼 낀 돌과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풍경이 색다르다. 5교와 6교 사이에는 주민센터와 파출소가 있는데, 벚꽃이 활짝 핀 벽화가 그려져 있는 포토존이다. 주민공모사업인 ‘우리동네 그림 그리기 프로젝트’로 완성됐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라는 대사로 유명한 드라마 ‘로망스’에 나온 다리가 3교인 로망스 다리다. 19년 전인 2002년에 방영된 드라마지만 진해에서는 봄마다 소환된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프레스 기계가 고장났다. 3교의 스탬프는 에코힐링센터에서 찍어 준다. 여좌천 양옆 키 낮은 주택들 틈에 자리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더하면 완벽한 힐링 타임이다. 벚꽃이 필 때면 SNS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생딸기 우유를 파는 과일카페도 있다.

스탬프를 다 찍고 에코힐링센터로 돌아가면 여좌동 지도가 실린 스카프와 벚꽃 모양 수세미, 스탬프 카드를 넣을 수 있는 카드 지갑을 기념품으로 받을 수 있다. 창원시민은 공직선거법 때문에 기념품은 받을 수 없지만 스탬프 투어는 가능하다.

여좌천을 방문한 시간이 오후 5시 이후라면 스탬프 투어엔 참여하지 못하지만 아기자기 야경을 맛볼 수 있다.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이 지난 10일부터 내년 1월 7일까지 4주간 ‘불빛을 블라썸’ 축제를 열고 있다. 창원 주민 16개 팀이 참가해 여좌천 5교와 6교 덱 길에 작은 ‘불빛 풍경’을 꾸몄다. 규모는 작지만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난다. 점등 시간은 오후 5시 15분부터 오후 11시까지다. 글·사진=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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