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K9 자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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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 국군의 무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독립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국가이다 보니 자체적으로 만든 무기가 있을 리 없었다. 일제가 버리고 간 무기와 미국의 지원 장비가 고작이었다. 개전 초기 만반의 준비가 된 북한군에 절대 열세를 면할 수 없었던 한 이유이기도 했다. 휴전 이후에는 나라 사정이 황폐화해 자체 무기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전쟁은 일단 멈췄지만, 여전히 남북이 대치 중인 현실에서 자체 무기 개발은 우리 국군의 숙원이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무기 개발은 초기 경제개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이른바 방위산업의 태동이다. 1970년 8월 국방과학연구소가 설립되고, 1973년 2월엔 ‘방위산업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면서 제도적인 뒷받침이 마련됐다. 이어 전력증강 사업인 ‘율곡 사업’이 추진됐다. 방위산업 육성은 그 과정에서 각종 비리, 예산의 과다 사용 등 적지 않은 문제점으로 국민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방위산업 육성을 부르짖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방위산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세계 무기 수출국 10위 권에 진입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엊그제는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K9 자주포를 호주에 약 1조 원 규모로 수출하는 계약도 성사됐다.

K9 자주포는 설계 단계부터 우리 기술을 기반으로 독자 개발됐고, 다양한 환경에서 운용할 수 있는 높은 활용도가 장점으로 꼽힌다. 이미 세계 6개국에 수출된 인기 모델로, 전 세계 자주포 시장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대당 가격은 50여억 원인데, 이번 호주와의 수출 규모는 사상 최대다. 이집트, 영국 등과도 현재 수출이 추진 중이라고 하니, 앞으로 더욱 ‘K-방산’의 도우미 노릇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방위산업은 다른 분야의 발전을 유발하는 파급 효과가 크고 국격을 높이는 정치적 이점까지 있어 다른 선진국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은 영역이다. 이 때문에 우리 업계도 선진국 업체들의 파상 공세와 코로나19로 요즘 들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K9 자주포의 대규모 수출 계약이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K-방산’이 이를 발판으로 더욱 세계적인 역량과 위상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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