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진심 담긴, 세상서 가장 따뜻한 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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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눔] 조손가정 할머니 훈훈한 기부

‘5만 원.’

어쩌면 한 줌도 되지 않을 적은 금액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러 날의 끼니가 달린, 목숨만큼 소중한 돈이다. 부산 서구 부민동에 사는 박정자(가명·80) 할머니에게는 몇 날 며칠을 아끼고 줄여도 모으기 힘든 돈이었을 테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덜 먹고 덜 입어서 모은 돈 5만 원을 연말에 자신보다 더 힘든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복지관에 기부했다.

박 할머니는 10대 손녀, 손자와 함께 작은 월셋집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타지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는 아들이 매달 조금씩 생활비를 보내줬다.

복지관 도움 받은 80대 할머니
백내장 수술·손자 학원비 보답
감사 편지와 함께 후원금 기탁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아들의 생활비 송금이 점차 잦아들었다. 오히려 등본상에 소득 있는 아들이 올라 있어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받을 수 있는 지자체 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거동이 불편해 따로 일을 할 수 없는 박 할머니에게는 매달 20만 원 안팎의 주거급여가 사실상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박 할머니가 지난해 처음 부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을 찾은 건 자신이 아닌 손녀, 손자를 위해서였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설움을 대물림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아이들이 최소한의 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복지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복지관 측은 학원비 연계사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영어학원비 등을 지원했다.

복지관은 올해 한국실명예방재단과 연계해 할머니가 백내장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백내장을 앓고 있던 박 할머니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거동이 불편했고 그래서 자주 넘어졌다. 무릎부터 허리까지 성한 곳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수술 이후 앞이 또렷해진 박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손수 식혜를 담가 복지관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박 할머니는 지난 3일 복지관을 직접 찾아 편지와 함께 현금 5만 원을 전달했다. 삐뚤빼뚤하게 꾹꾹 눌러쓴 글씨체와 맞춤법에 맞지 않는 서툰 단어들이 복지관 직원들의 마음을 울렸다.

5만 원이라는 돈이 할머니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직원들은 여러 차례 후원금을 거절했다. 그러나 박 할머니는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다며 끝내 봉투를 직원 손에 쥐여줬다.

박 할머니는 “나를 살리시고 도와주시는 이 은혜가 매일같이 생각이 난다”며 “내 손녀와 손자를 1년간 영어학원에 보내 주시고 할머니 백내장 수술을 받도록 도와주셔서 앞을 잘 보게 해 줬다”고 편지에 썼다.

또 “석유 보일러 기름도 넣어 줘서 작년 한 해와 금년도까지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기에 너무도 행복하다”며 “정말로 오랫동안 건강하시길 기원하면서 작지만 정성으로 봉투 안에 5만 원을 후원한다”고 적었다.

김정자 부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장은 “할머니께서 주신 이 편지는 아마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며 “복지관 후원금으로 입금해서 다른 어르신들을 지원하는 사업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준영 기자 jyoung@
박정자(가명·80) 할머니가 평소 모은 5만 원을 부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에 기부하며 함께 쓴 편지.

부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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