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면, 이렇게 야만스러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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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형제들/이대진

지난 달 1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같은 날 <살아남은 형제들>이 출간됐다. 이 책은 누군가의 죽음을 이유로 역사적 진실을 매장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듯 우리 곁으로 왔다.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등 관련자들의 증언을 담은 <살아남은 형제들>은 무간지옥을 연상케하는 처절했던 과거를 현재로 소환한다. 실체적 진실 규명과 반성을 애써 외면한 이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대중이 무지하거나 침묵할 때, 반지성주의가 판칠 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야만스러워질 수 있는가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생생한 증언
납치, 폭행, 살인 자행… ‘지옥’ 연상
개인 탐욕·비뚤어진 국가 권력 합작품
진실 규명 외면한 이들에게 질문 던져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자 선도라는 명목으로 불법적인 납치와 감금, 폭행, 살인 등을 자행한 곳이다. 형제복지원의 전신으로 1960년 설립된 형제육아원의 운영 기간까지 더하면 그 기간은 무려 27년에 달한다. 그 안에서는 실제로 살인에 가까운 폭력, 노동 착취, 성적 유린, 그리고 살인이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피해생존자 27명과 이들을 지켜본 야학교사 1명,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고 도왔던 시민사회·학계 전문가 5명의 증언은 이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당시 전두환 정권 등 권력의 비호는 형제복지원의 불법적인 운영을 더욱 부추겼다.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청와대로 불러 국민포장(1981년)과 국민훈장 동백장(1984년)을 수여했고, 매년 10억~20억 원을 시설 운영비로 지원했다. 형제복지원은 개인의 탐욕과 비뚤어진 국가 권력의 합작품인 것이다. 이 책은 그 절망의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

<부산일보> 현직 기자인 저자는 2020년 4월부터 12월까지 ‘살아남은 형제들’이라는 기획 보도를 통해 증언을 담은 기사와 동영상을 매주 한 편씩, 총 33편 게재했다. 보도 당시 수천·수만 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다.

책에 담긴 내용은 충격적이다. 형제복지원의 운영자 일가는 수천 명에 달하던 형제복지원 사람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다. 모든 이들이 감시와 감금의 대상이었고, 비뚤어진 군대식 문화가 일상 전반에 작동됐다. 부산 사상구 주례의 산기슭에 있던 형제복지원. 그 산을 깎아 터를 닦고 직접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건물을 올린 이들도 형제복지원 원생들이었다. 이들은 낚시 공장, 가구 공장, 봉제 공장, 목공장 등 각종 공장에서 무급에 가까운 노역을 하루 10시간 이상 감당했다. 제대로 된 치료 대신 상처 부위에 소금이나 된장을 발라야 했고, 쓰레기나 다름없는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먹어야 했다. 관리자들에게 원생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원생은 단지 돈벌이 수단,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구타는 일상이었고, 성폭행도 비일비재했다. 박인근 원장은 형제복지원을 폭력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원생 간에 계급을 만들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체벌하도록 했다. 폭력에 저항하거나 도망가다 잡혀 돌아오면 죽을 만큼 때렸고, 실제 많은 이들이 모진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달한다. 시신은 뒷산에 암매장했고, 일부 시신은 해부용으로 대학병원에 팔기까지 했다.’

증언을 얻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 작업에 관여한 모든 이들에게 크고 작은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방대한 기사와 동영상이 게재됐지만, 소화하지 못한 이야기가 여전히 많았다. 읽어주길, 들어주길 바라는 말들이 눈과 귀에 밟힌 채 꿈틀댔다. 이 책은 그 고민의 산물이다. 잠깐 읽히다 사라지는 기사와 달리, 적어도 책은 두고두고 읽히고 또 읽힐 테다.’

피해 당사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날것의 증언을 모은 이 책은 글로 만들어진 ‘논픽션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증언의 조각이 더 큰 사건의 조각으로 모이고, 다시 더더욱 큰 진실의 조각이 되어 마침내 우리는 형제복지원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부산 출판계를 지키는 호밀밭의 역량이 응집된 이 책의 편집과 디자인은 책에 담긴 의미를 더 크게 공명시킨다.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는 그날까지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후회와 원망,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는 피해자들이 자신은 물론 사회와 화해하고 ‘형제복지원’ 다섯 글자의 무게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절규의 증언’은 우리의 화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대진 지음/호밀밭/432쪽/1만 8000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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