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채찍만으로는 달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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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

에 나오는 인물 중에 누구를 좋아하나? 필자는 춘추시대의 정치가이자 ‘장사의 성인’으로 추앙을 받는 범려가 좋다. 범려는 인생 삼모작에 모두 성공한 인물이다. 이른바 ‘오월동주’로 잘 알려진 두 나라 간 전쟁에서 오나라를 멸망시킨 인물이 범려다. 그는 전쟁 후 권력에서 스스로 물러난다. 교역이 왕성한 산동반도로 이주해 장사를 했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큰 부를 축적했다. 범려에게는 ‘삼취삼산’과 ‘계연’이라는 두 개의 연관 검색어가 늘 따라붙는다. 삼취삼산(三聚三散)은 ‘재산을 3차례 모아서 3차례 모두 나눠 주었다’로 중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그런 범려에게 계연이라는 스승이 있다. 전쟁과 장사에 관한 지식과 지혜를 그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아 실천했다. 스승이 물려준 7가지 지혜와 계책을 뜻하는 ‘계연칠책’이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다. 그를 21세기에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위급한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기업 담합’ 천문학적 과징금
규제 급증·기업가 정신 지수 급락
투자 유인 당근 있어야 재투자
기업이 국가에 기여할 길 터줘야

세계는 일찍이 국제 분업을 통해서 SCM(공급망 관리)의 효율성을 공유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국제 물류시장은 롤러코스터처럼 불안해졌다.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중에 변이종의 출현으로 다시 혼미한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가뭄이 들면 오히려 배를 준비해 수재에 대비하고, 홍수에는 되레 수레를 준비하여 가뭄에 대비하면 어떤 화도 예방할 수 있다’는 계연칠책을 되뇌게 된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 미리 대응하는 능력은 바로 지금, 세계의 대전환기 때에 더욱더 절실하다. 무한경쟁이 요구되는 국제 시장은 총칼 없는 전쟁이다. 국가와 기업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대응해도 역부족인, 험난한 시대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해운기업 담합에 대한 천문학적인 수준의 과징금 부과, 중대재해 처벌법, 초과 유보 소득 과세, 기업 규제 3법은 국가와 기업의 ‘2인3각’ 달리기를 더욱 어렵게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여 동안 국회에 발의된 규제 건수(3950개)는 박근혜 정부(1313개)의 3배에 달했다. 특히 반기업 규제가 급증했다는 지적은 허투루 들을 얘기가 아니다. 정부여당은 혁신과 개혁의 이름으로 발의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 기업은 의문을 품고, 서민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전경련이 조사한 ‘규제개혁 체감도’가 2018년 97.2, 2019년 94.1, 2020년 93.8, 2021년 92.1로 계속 떨어진 것도 심각하다. OECD 가입 37개국을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 지수를 산출한 결과는 공포스러울 정도다. 우리나라는 리투아니아보다 더 낮은 27위다. 주요 선진국이 기업을 독려하고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면서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규제를 푼다고 기업 활력이 무작정 샘솟는 것은 물론 아닐 테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 역할은 강화돼야 한다. 그러나 채찍만으론 경제라는 말은 잘 달리지 않는다. 당근과 채찍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소득에 대한 과세로 분배의 정의를 획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세란 채찍과 함께 투자 유인이란 당근이 있어야 기업 소득이 재투자된다.

그런 점에서 해운기업에 대한 ‘톤세 제도’는 규제 혁신을 논의할 때 참고할 만하다. 톤세 제도는 말 그대로 선박의 중량에 과세하는 제도다. 일반적으로 법인세는 소득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있으나, 해운기업은 법인세와 톤세,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소득이 많이 발생하면 톤세를 선택하고, 적자가 발생하면 법인세를 고수해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다. 독일,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유럽 해운 강국들이 먼저 시행했고, 우리나라는 2005년 도입했다. 당초 2019년까지만 시행하는 일몰제 대상이었으나 편의치적선의 국적선화를 유도하는 등 기대 이상의 효과가 나타났다. 해운 선진국인 일본까지 우리 제도를 배우러 오면서 시행 기간이 2024년까지로 연장됐다. 선박은 세금 부담 때문에 일부러 국적을 옮기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 편의치적선이라고 하는데, 국내에서도 약 70%의 선박이 그런 상태다. 이러한 편의치적선을 국내로 옮기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이에 발맞추어 필자의 회사도 대한민국 제주에 기적을 두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톤세 제도는 선박을 국적선화하는 당근이 되고, 우리나라의 해양력도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 해운기업은 절세에 따른 여유 자금을 새로운 선박 확보로 국제 경제력 제고와 서비스 개선에 사용할 수 있다. 국가와 해운기업이 모두 이롭고 선순환 경제 구조도 구축된다. 국내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기업인이 많다. 기업과 기업인을 적대시하기보다 이들이 국가와 사회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길을 트는 것이 정부의 역할 중 하나다. 삼취삼산이 아니라 십취십산을 기대할 수 있도록 정부가 마중물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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