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산이라는 가능성, 혹은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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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편집국 부국장

제1야당 대표의 ‘부산행’이 지난주 화제였다. 11월 29일 밤 취중 SNS 글을 남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다음 날 언론에 알리지 않고 부산에 날아왔다. 이성권 부산시 정무특보,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이날 밤 만나고 12월 1일엔 장제원 의원 사상 사무실을 찾았다. 이 대표의 발걸음은 순천, 제주로 이어졌다. 윤석열 후보의 선거 전략,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방향에 대한 이 대표의 강한 이의 제기였다. 왜 하필 첫 행선지가 부산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다수 언론은 내년 대선에서 부산 표심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고려한 행보로 해석했다. 하지만 잠행의 원인 제공자로 꼽힌 윤석열 후보는 “당무 거부도 아니고 이 대표가 재충전(리프레시)하기 위해 간 것 같다”고 말해 사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윤 후보가 뒤늦게 지난 3일 울산 언양에서 이 대표를 만나 ‘화합주’를 마시고 김종인 총괄선대본부장을 수용한 뒤, 4일 부산 서면에서 첫 동반 공개 일정에 나서면서 양측 갈등이 일단은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부산이 갈등 표출과 봉합의 무대였다.

이준석·윤석열 갈등 표출·봉합된 부산
‘서울공화국’ 한국에서 재충전 최적지
방전된 심신 채워주는 것이 부산의 힘

가능성 살리고 리스크는 줄여야 발전
기득권 저항, 지역 대응 역부족 여전
냉철한 유권자 각성해 현명한 선택을

복잡한 정치판 수싸움을 떠나 이 대표의 부산행에서 부산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본다.

윤 후보 말대로 부산, 재충전하기 좋은 도시 맞다. 매년 가을 영화인들이 부산에 모여드는 것은 부산국제영화제가 그들에게 비즈니스 면에서 필요한 무대이기도 하지만, 동료 영화인과 만나 소주 한 잔 하며 가을 바다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더 원초적인 끌어당김 때문이기도 하다. ‘부산’하면 일단 휴식과 바다, 파도 소리가 떠오른다는 영화인이 여럿이다. 영화인은 아니지만 2016년 3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심각한 당내 공천권 갈등 와중에 영도다리에 기대 ‘옥새들고 나르샤’라는 인생샷을 남겼다.

재충전은 심신 에너지를 방전시키는 일상의 장소를 벗어나는 데서 시작된다. ‘서울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어디론가 ‘불쑥’ 가장 멀리 떠나기에 좋은 곳이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서울에서 대각선 대칭점에 있는 부산이 아닐까 싶다. 물리적 거리는 먼데 교통편이 편리하다는 점도 접근성을 높이는 데 한몫한다.

인구가 줄어 점점 고령화 되고, 내세울 만한 대기업도 없고, 문화적 토양도 빈약한 ‘노인과 바다’라고 자조하지만, 부산에는 방전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분명 있다. 부산을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방법은 이런 가능성을 하나하나 현실로 발현시켜 나가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이 가능성의 많은 비중은 산·강·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 환경, 절묘한 지리·정치·경제적 입지와 근현대 격동의 역사가 응축된 공간, 여기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시민들이 차지한다.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과 이주민도 편리하고 안전하게 사는 도시, 젊은이들이 마음껏 도전해 실패하더라도 얼마든지 재기할 기회를 주는 넉넉한 부산이 된다면 잠재된 가능성들이 현실화 될 것이다.

유엔 해비타트가 세계 최초 부유식 해상 도시를 부산에 짓는다는 소식 역시 향후 지구 온난화로 수장 위기에 처할 세계 주요 임해 도시의 나아갈 길을 선도적으로 모색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세계 선두권으로 분주한 항구를 보유하고, 수변 건축·엔지니어링 경험도 풍부해 부산을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지역의 역사 공간과 자연 환경을 잘 가꾸면서,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를 늦추는 데서도 다른 도시의 모범이 될 행동과 조치가 이뤄진다면 부산의 가치는 더 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득권의 벽은 여전히 높다. 블랙홀처럼 비수도권 인재와 자원을 빨아들인다. 비슷한 임해 도시인 인천이 인구만 부산에 뒤질 뿐 2017년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부산을 추월했다. 첨단 IT 기업은 판교, 바이오 기업은 인천으로 몰려든다. 학령 인구가 줄고 취업 시장에 빙하기가 오자 벚꽃이 먼저 피는 남쪽부터 피터지는 신입생 모집 전쟁이 벌어지고 급기야 문닫는 대학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역의 대응도 아직은 미흡하다. 수천 억 원 민간 투자 사업을 수도권에 빼앗기고도 바뀌지 않는 칸막이 행정, 노쇠한 경제계, 작은 기득권에 매달리는 정치권. 부산의 가능성을 그저 가능성에만 머물게 하는 장애물이자 리스크다.

내년 2월 부산은 울산·경남과 함께 특별광역연합을 출범시키고, 3월엔 대통령, 6월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한다.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일 것이다. 리스크를 털어내고, 무한한 가능성을 발굴하는 임무를 수행할 리더십이 시민의 선택으로 탄생한다. 선출될 리더십은 결과물일 뿐이다. 시민이 바람몰이에 휩쓸리는 표밭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냉철하게 선택하는 유권자로 깨어날 때, 부산이라는 도시는 시민과 국가에 리스크가 아닌 가능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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