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의 시인의 서재] 유쾌한 결혼식과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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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시와사상’ 편집위원

코로나19 때문에 미루었던 지인의 결혼식 초대장이 카카오톡으로 왔다. 영화배우처럼 멋지게 촬영한 청춘남녀의 싱그러운 모습에 미소를 짓는다.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 화장을 하고 하객 패션에 적절한 옷을 고르느라 거울 앞에서 서성였다. 주차할 공간이 부족할까봐 일찍 도착하니 혼주들은 미리 나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예식장 안을 들여다보니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이 마이크를 잡고 축가를 연습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참석하는 결혼식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설레었다. 하객을 많이 초대하지 않은 스몰 웨딩이었다. 참석 의사를 밝힌 사람들을 적절하게 자리 배치하고 꽃 장식도 소박하지만 우아했다. 시간에 쫓기듯 사람들이 붐비는 결혼식이 아니어서 좋았다. 신랑이 입장하는 통로 주변에 우인들 자리를 배치해 활기가 넘쳤다. 주례사가 없고 신랑 신부가 자신들의 사랑과 언약을 소박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정겨웠다.

이전 세대와 사뭇 다른 MZ세대의 혼인
관습과 제약에서 한층 자유로워진 모습
사랑·속박 공존 결혼 생활 잘 헤쳐 나가길
과중한 삶의 무게엔 사회의 도움 있어야

MZ세대의 결혼에 대한 의식은 이전 세대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결혼식에서 명망 있는 분이 주례사를 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들의 사랑과 미래를 얘기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결혼 연령이 점점 늦어지고, 한편으로 동거하는 커플도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있다. 그래서 혼전 임신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울러 독신을 선택하거나 결혼 후에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성소수자의 사랑도 인정하면서 한국 특유의 관습이나 제약이 이전보다 많이 느슨해지고 삶의 다양한 양태를 수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결혼 풍속과는 달리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조 시대를 살았던 크리스티나 로세티(Christina Rossetti)는 첫 시집인 에 수록된 ‘북쪽에서 온 사랑’에서 결혼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녀의 오빠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영국에서 라파엘전파 운동을 시와 회화 두 영역에서 활발하게 전개했다. 라파엘 이전의 회화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친 그는 상징과 문학적 요소를 회화에 가미하면서 여동생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아름다운 모델인 아내 엘리자베스 시달과 유부녀인 제인 모리스 등과 숱한 염문을 일으키며 당대를 풍미했다. 그런 오빠에 대한 반감이었는지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의 삶을 살면서 시를 썼다. 1830년에 출생한 그녀는 세 명의 구혼자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 시대에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사회적 여건을 보았을 때 아주 힘든 선택이었다. 대부분의 여성이 가족의 의사에 따라 결혼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수도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로세티의 시는 리듬이 발랄하고 통통 튀는 감각이 살아 있다. ‘북쪽에서 온 사랑’의 3연과 4연에서는 고민하는 연인의 내면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결혼식의 시간이 다가왔어요. 통로는/ 그날의 햇빛과 꽃으로 붉게 물들었죠./ 발맞춰 걸으며 난 속으로 생각했어요./ ‘아니오’를 생각하기엔 너무 늦었어’라는 표현에서 결혼을 앞두고 번민하는 연인의 심리를 드러낸다. 결혼 혹은 사소한 의사 결정에 있어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자유에 대한 인식을 은연중에 담고 있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픈 욕망을 가졌지만 시의 끝부분에 신부로 등장하는 시적 화자는 ‘지금까지도 나는 그에게 ‘아니오’를 말할/ 심장도 힘도 의지도 소망도 없어요’라고 토로한다. 사랑의 고리 때문에 자유가 속박되었음을 고백한다. 사랑과 속박이 공존하는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생각하게 만드는 시이다. 대화체를 이어 나가면서 시를 전개하는 방식이 독특하며 현대적 감각이 묻어난다.

예수가 공적인 생활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 기적을 베푼 사건은 ‘가나의 혼인 잔치’이다. 피로연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마리아가 예수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예수는 물을 아주 맛있는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보여준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까지 독신의 삶을 선택했지만 결혼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축복을 베푼 것이다. 신성하고 영적인 삶을 지향한 예수이지만 세속을 살아가는 일상의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한 기적이다.

MZ세대의 유쾌한 결혼식을 보면서 흐뭇하지만, 한편으로 너무 비싼 집값과 고용 불안에 결혼할 생각조차 못하는 청춘에 대한 걱정도 밀려온다. 이전과 달리 결혼을 하든 독신을 선택하든 자유가 주어졌지만 삶의 기본적인 토대가 취약해져 불안하다. 월세에 짓눌려 아이 낳는 것을 포기하는 사태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힘든 삶의 무게가 정부의 올바른 정책과 실질적인 도움으로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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