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자테니스협회(WTA), 1조 원 손실에도 지키려 한 가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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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자테니스협회(WTA)가 중국과 홍콩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를 중단하기로 했다. WTA는 세계 랭킹 1위 복식 선수 펑솨이(사진)가 중국 고위급 관리에 의한 성폭행을 폭로한 뒤 중국 정부로부터 안전을 위협받고 있으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혹과 관련 “양심적으로 중국에서 토너먼트를 개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걸려 있는 계약 규모는 10억 달러(약 1조 1800억 원)로 알려졌다. WTA가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감수키로 한 것이다.

“중국·홍콩 모든 토너먼트 중단 ”
중국 테니스 선수 평솨이 사태
성폭력 폭로 철회 압박에 우려
WTA 설립 기반 흔드는 일 판단
안전 위협 상황서 경기 못 연다
10년간 10억 달러 손실도 감수

스티브 사이먼 WTA 의장 겸 CEO는 1일(현지시간) 공식 성명을 내고 “홍콩을 포함한 중국에서 개최되는 모든 WTA토너먼트의 즉각적인 중단을 선언한다”며 “펑솨이가 밝힌 성폭행 혐의에 대해 검열없는 완전하고 투명한 조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이먼 의장은 “지난달 2일 펑솨이는 중국 고위 관리에 대한 성폭행 혐의를 폭로했다. 그 순간부터 펑솨이는 성폭행과 관련해, 특히 힘 있는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을 때 목소리를 내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펑은 자신의 글에서 ‘알이 바위에 부딪히는 것과 같든, 불꽃에 이끌려 자멸을 부르는 나방이 되어도 진실을 말하겠다’고 했다. 그녀의 힘과 용기를 존경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권력자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성추행 의혹을 일축할 수 있다면, WTA가 설립된 기반인 여성평등은 엄청난 후퇴를 겪을 것이다. 그런 일이 WTA 선수들에게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펑솨이는 지난달 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장가오리 전 중국 국무원 부총리의 집에서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펑솨이의 폭로 글은 몇 분 만에 삭제됐고, 펑솨이는 이후 2주가량 자취를 감췄다. 이에 중국 언론은 펑이 베이징에서 열린 주니어 대회에 참석했으며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펑이 안전하고 건강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펑솨이가 안전하다는 증거를 요구했고, 세계 각국의 운동선수들과 인권 단체 등이 펑솨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메시지를 낸 뒤에야 펑솨이는 이메일과 영상 통화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펑솨이는 자신의 성폭행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고 뒤늦게 부인해, 중국 당국의 강요로 인해 성폭력 주장을 번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사이먼 의장은 “펑솨이가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성폭력 주장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양심적으로 어떻게 우리 선수들에게 중국에서 경기하라고 요청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현 상황을 감안할 때 2022년 중국에서 대회를 개최하게 된다면 우리 선수들과 스태프 모두가 겪을 위험에 대해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중국과 WTA는 시즌 최종전인 WTA 파이널스를 2030년까지 개최하게 되어 있다. 계약 규모는 10년간 1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WTA는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손실을 감안하면 WTA의 결정은 스포츠계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사이먼은 “경제적 손해를 따지기보다는 국제 사회가 펑솨이와 모든 여성을 위해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계속 목소리를 내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WTA의 이 같은 결정에 스포츠계 인사들은 용감한 결정이라며 환영했다. 테니스계 원로인 빌리 진 킹은 트위터에서 “WTA는 선수들을 지원하는 올바른 역사 편에 서 있다”고 격려했고,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도 “돈보다는 원칙을 우선한 WTA의 용감한 결정”이라고 트윗을 날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서구 기업의 CEO들이 중국에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일이 적을뿐더러, 원칙 때문에 중국시장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는 일도 거의 없다”며 “WTA가 다른 스포츠 조직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아니면 (중국 압력에 굴복했던)NBA루트를 따를지 지켜봐야 한다”고 논평했다.

남자 투어를 주관하는 테니스전문가협회(ATP)는 펑솨이 안전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으나, 중국 경기를 보이콧하겠다고까지 주장하지는 않았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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