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국가에 의한 역사왜곡 단죄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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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내년 대선을 앞둔 각 후보의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후보들의 행보에는 상황별, 장소별로 관련된 질문과 답변이 있게 마련이고, 후보들의 답변 내용은 그들이 권력자가 되었을 때의 정책과 구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그런데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왜곡, 조작, 부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역사왜곡 단죄법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어느 후보의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역사왜곡 발언으로 인한 사회적 물의와 책임론은 특정한 해의 문제는 아니었고, 이를 방증하듯 역사왜곡 발언에 대한 처벌 법안 발의는 여러 차례 있었다. 실제로 20대 국회의 마지막까지 처벌 법안에 대한 쟁론이 있었고, 21대 국회에서도 지난해 6월 양향자 의원을 대표로 한 역사왜곡금지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5·18민주화운동 및 4·16 세월호 참사 등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왜곡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행위자들을 현행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나 모욕죄 형량보다 가중처벌하고, 재범자에 대한 징역형도 규정하며, 소위 역사부정죄에 대해서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위법성조각사유만을 규정하고 있다.


역사왜곡 처벌 법안 여러 차례 발의
표현 행위자 처벌은 위헌성 시비도

반론의 여지 없는 왜곡은 규제해도
헌법적 형량 기준에 맞춰 제한해야

역사적 진실 평가는 사회 합의 전제
국가나 정쟁이 재단해서는 안 될 일

그런데 이러한 처벌 법안의 헌법적 논쟁점은 그 처벌 대상이 특정한 ‘의사표현행위’이고 ‘표현의 내용’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부터 변함없이 보장되어 온 기본권이다. 특히 의사 표현의 자유는 원칙적으로 표현 행위자의 사고 과정을 거친 평가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그 의사 표현을 통해서 여론 형성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의사 표현이 사고 과정을 거친 이상 사고 과정의 질이나 표현된 의사 내용이 설득력을 갖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의사 표현의 자유는 기본권 주체의 의사 표현 행위 그 자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현 행위자의 의사 표현 내용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한 처벌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서의 위헌성 시비를 쉽게 비껴갈 수 없다.

물론 의도적인 허위 사실 주장이나 허위성이 이미 표현 행위 시점에 명백히 확정된 사실 주장이라면, 문제 된 표현이 여론 형성의 참여적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표현 행위 사후의 책임을 묻는 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제한의 정도와 방법에 대해서는 헌법이 요구하는 비례성을 갖추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극히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 제한이어야 하며, 위축적 효과가 미치지 않도록 제한되는 표현의 개념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는 것이 헌법적 요구다.

독일형법상의 대중선동죄나 프랑스 게소(Gayssot)법의 처벌 규정처럼, 반론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진실에 대한 부인이나 왜곡적 행위에 대한 규제 필요성은 우리 사회에서도 인정된다. 그래서 문제 되는 표현 행위에 대한 제한은 목적상 정당성이 인정된다. 하지만 정당한 목적을 가졌다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때문에 헌법적 형량을 기준으로 제한 방법을 디자인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에서 논의된 역사부정 등에 대한 처벌 입법안들의 내용이 그러했듯, 역사왜곡금지법안의 처벌 규정들도 헌법적 형량의 면에서는 간과되었거나 고려하지 못한 점들이 많다. 우선 형사법적 처벌 유형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 되는 표현에 대한 제한적 조치로서 형벌 부과는 최후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재 법안의 처벌로 효과가 작거나 없다면 그다음 방법은 더 가중된 처벌로 갈 수밖에 없다. 최후적 수단인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표현 행위자에 대한 ‘진실성 심사 의무’를 부과하거나 허위 확인 후의 부작위 의무 부과와 가중적 손해배상책임 인정 방안 등 고려할 만한 다른 방법들이 남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봤어야 한다.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Pierre Nora)의 말처럼, 이 처벌법이 관련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형벌제재의 위협 아래 역사적 진실을 강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진실에 대한 평가는 오랜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국가 일방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역사부정 규제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의 위험성을 간과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의사 표현의 여론 형성에의 영향력은 합리적인 시민들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여론 형성력이 없는 역사부정 표현들은 그 표현의 청자(聽者)인 시민들에 의해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또 다른 역사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이것이 그 판단을 국가나 정쟁에서 대신 재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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