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자유특구? 실상은 ‘규제 정글’… 기업 자금줄 막혀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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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특구 이대로 안 된다] (중) 허울뿐인 규제 샌드박스

부산이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규제 샌드박스’가 적용되고 있다지만. 관련 업체들은 여전히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부산일보DB

“250개 관련 기업의 창업을 유도하거나 유치하고 1000명의 고용을 창출해 895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기대된다.”

2019년 7월 정부가 부산을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면서 내놓은 청사진이다. 그러나, 특구 지정 이후 2년간 거둔 성과는 미미하기 이를 데 없다. 기업 유치와 창업은 기대에 훨씬 못미쳤고, 결과적으로 좋은 일자리 창출에도 실패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특구 운영 방식을 고집한다면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는 데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30일 이내 사업 인허가 불구
이런 저런 이유로 허가 못 받아
제품 개발하고도 판매도 못 해
정부 가상자산거래소 부정적
‘빗썸’ 부산 진출 추진도 막아
기술과 자금 거래 인프라 전무
기업 유치 힘들고 창업 꿈 못 꿔


■말만 자유특구, 실제는 ‘규제 정글’

부산이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면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관련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였다.

블록체인 자체가 혁신적인 기술이어서 관련 법령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기술을 가졌거나 개발 중인 기업들은 해당 사업이 기존 법령의 허용 범위 안에 있는 지 확인이 어렵다. 정부는 모호한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특구 내 블록체인 관련 혁신 기업들이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키로 했다.

규제 샌드박스가 적용되면 신규 사업 허가가 필요한 경우 허가 기준 요건 등을 30일 내에 신속하게 확인해줘야 한다. 만약 관련 부처가 30일 동안 회신하지 않으면 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또, 관련 법령이 없거나 기존 규제의 적용이 불가능한 경우 임시 허가를 내주게 돼 있다. 만약 법령과 규제가 불허하는 사업이라도 특구 내에서는 예외적으로 실증특례까지 허용된다.

한마디로 미풍양속에 어긋나지 않는 사업 아이템이라면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규제 샌드박스’의 도입 취지다.

그러나, 특구 내의 현실은 반대였다. 블록체인관련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시장에서 판매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부산 남구 문현동 A사 관계자는 “완성된 블록체인 기술이 인터넷 결재를 통해 판매되는 게 당연한데 그게 안되고 있다”면서 “한때 블록체인 교육 관련 강의조차 인터넷으로 판매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블록체인 관련 기술거래소를 추진하고 있는 B업체도 “관련 규제가 없으면 30일 이내에 사업 인·허가를 내줘야 함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허가를 받지 못해 아직까지 사업 진행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부와 부산시가 △해양물류 플랫폼 구축 △디지털바우처 발행 △스마트투어 플랫폼 구축 △공공안전 영상제보 서비스 등 특구사업을 4개 카테고리로 지정한 것도 되레 규제 요소로 작용했다는 게 업체들의 지적이다.

C사 관계자는 “부산에는 특구 지정 이전에도 블록체인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이던 20여 개 혁신적인 기업들이 있었다”면서 “특정 특구 사업이 지정되고 지원이 몰리다 보니 특구 사업자로 지정되지 못한 기업들이 고사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여러 기업들의 혁신 역량을 공정하게 평가해 다양한 기업들을 조금씩이라도 지원했다면 훨씬 많은 창업과 기업 유치효과가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자본 시장없이 꿈꾸는 산업 생태계

지난해 초 자산 거래소 ‘빗썸’을 운영하는 빗썸코리아가 부산 진출을 추진했다. 자회사인 GCX얼라이언스를 통해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에 100억 원을 투자해 통합 가상자산거래소를 운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정부에 막히면서 ‘가상자산의 유동성 공유 플랫폼 구축’ 사업은 특구 사업자 후보군에서 탈락했다. 블록체인특구내 기업들은 아쉬워했다. 기술이 자금을 만나 성장하고 산업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이처럼 정부는 부산을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면서도,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을 통해 투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자산을 분리해 기술만 육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불거진 가상자산 이상 투기 열풍과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업계는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면서도 이런 방식으로는 블록체인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은 물론 관련 기업 생태계 형성과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블록체인기업이 기술을 소개할 수 있는 창구, 자금을 투자받을 수 있는 통로, 자금과 기술이 만나서 거래할 수 있는 인프라가 특구 내에 전무하기 때문이다. 특구 내에서 조차 자금 조달의 이점을 누리지 못하니, 기업 유치와 창업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D업체 관계자는 “세계에서 혁신적인 블록체인 기술 혹은 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들은 노드 참여자들에게 코인을 보상으로 지급해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왔다”면서 “부작용을 우려해 가상 자산을 물론 기술까지 판매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교각살우’ 같이 어리석은 짓이다”고 성토했다.

부산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시는 특구에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디지털자산거래소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기존 가상자산거래소의 변형된 형태인 디지털자산거래소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코인뿐만 아니라 증권형토큰(ST), 대체불가능토큰 등 모든 종류의 디지털자산을 취급, 업체의 기술이 자금을 만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반대로 추진에 애를 먹고 있다.

최근 창립한 부산블록체인산업협회 김태경 의장은 “기업들이 창업하고 성장하는 데 투자금의 원활한 공급만큼 중요한 요인이 없다”면서 “정부가 이상 과열 현상을 빚고 있는 가상자산시장의 부작용만 강조해 특구 지역에서 조차 가상자산 거래소나 기술 거래소 설립을 억제만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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