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관의 남북 시선] 무언(無言)의 열병식과 순항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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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북한이 지난 11, 12일 발사한 순항미사일이 7580초를 비행해 1500㎞를 날아갔다. 북한 영공에서 ‘8자’ 형태로 비행하며 매우 정밀하게 목표에 명중했다고 북한 당국은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미 정보 당국의 발표가 없자 북한이 먼저 발표한 것이다. 14일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의 도쿄 대화와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서울 방문을 앞두고 발사한 시점도 절묘했다. 이후 어제는 동해상으로 미상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했다.

최근 북한의 ‘저강도 반응’ 주목해야
9월 9일엔 첫 민간 열병식 개최

대외 위협보다 대내 결속에 더 중점
일시적·유화적 제스처 아닐 가능성

핵 문제 위한 전략적 변화일 수도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 조짐 기대

먼저 순항미사일 특성상 우리 정보 당국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알고도 정보 자산 공개를 꺼려 밝히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으나, 알 수는 없다. 더욱이 순항미사일은 대체로 일반 여객기처럼 속도가 느리고 저공으로 비행한다. 무인 폭격기와 개념상 차이가 없어 국제적으로 제재하는 경우도 드물다. 유엔 제재결의안 2항에도 탄도미사일과 핵실험은 금지하고 있지만, 순항미사일은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순항미사일이라 해도 미국의 ‘토마호크’처럼 소형 핵탄두를 장착하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파괴력 15kt보다 20배 이상 강력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미 15년 전에 순항미사일 ‘현무3’을 개발했고, 사정거리 1500㎞인 ‘현무3-C’도 10년 전부터 중부 전선에 배치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 순항미사일은 여객기 속도의 북한 순항미사일과는 공격력에서도 차이가 난다.

주지하다시피 지금의 한반도 대결 구도에선 남북 간 무기 성능 경쟁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달 초 SLBM 잠수함 발사에 성공했고, 한두 차례 추가 실험에 성공하면 최초의 3천 톤급 잠수함인 안창호함에 탑재해 위력적인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우리가 세계 8번째 SLBM 보유국이 되자, 이런 무기 자산이 없는 일본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이 시점에서 최근 북한의 반응이 예상과 달리 ‘저강도’로 나오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난달 한·미 연합훈련으로 인해 13개월 만에 복원됐던 남북통신선이 다시 중단됐고, 북한 반응도 매우 거칠었다. 김여정 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발표”한 담화를 통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 행동”이라고 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또는 SLBM을 실험할 가능성을 전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와 달리 9월 9일 공화국 수립기념일 열병식은 민간 열병식으로 진행되었고, 아직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은 하지 않고 있다. 민간 열병식은 북한 역사에서 최초의 일이다. 과거 예비군인 노농적위대가 군 열병식에 참여하는 일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민간인과 사회 안전요원들이 중심이 돼 전개한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아마도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지도부의 판단은 지금 시점에서 대외적인 위협을 가하기보다는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최근 살이 빠지면서 체형이 달라진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대미 비난이나 메시지, 새로운 제안도 없다. 열병식에 단골로 등장하던 대형 장거리 미사일도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유엔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통해 주변 국가를 환기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동해상의 발사체도 단거리 미사일이거나 방사포로 예상된다.

최근 북한의 대남 담화를 보더라도 올해 초의 담화와 비교할 때 양적인 면에서 줄어들었고, 내용 면에서도 매우 완곡한 표현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4월께부터 10여 차례 주고받았다는 남북 정상 간 친서의 영향일까? 물론 북한이 삼중고를 겪으면서 이런 내부 곤경을 타개하기 위해 외부와의 관계 개선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북한의 과거 습성을 살펴보면 국내의 어려움만으로 대외정책 노선을 긍정적으로 변경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위기 시에 부정적인 변화를 보였던 경우가 많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하였을 당시에도 대외적으로는 대단히 도발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시 말해 지금의 저강도 대응 방식을 일시적이고 전술적인 유화 제스처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즉 김정은 정권이 핵 문제를 해결하고 대외 관계를 개선하려는 전략적 변화로 본다면 오히려 여러 행위가 더 납득이 간다.

북한은 2017년 11월, 화성-15형 발사 이후 3년 10개월 동안 유엔 결의안의 금지 조항을 어기지 않고 있다. 이는 남북관계와 한반도에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략무기 없이 전개한 ‘무언(無言)의 열병식’이 한반도 평화에 좋은 조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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