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망 나와도 한국 떠나야 살 수 있는, 슬픔도 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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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길 오르는 대형견들

“너는 별로 좋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가 나를 만났지.” 지난달 웰컴독코리아의 인스타그램에는 꼭 1년 전, 캐나다 밴쿠버로 입양간 개 달리의 가족이 올린 후기(사진)가 게시됐다. 처음 몇 달간 염증과 알레르기로 고생하던 달리는 이제 바위와 숲길을 뛰어놀며 ‘여기 데려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는 것 같은 눈으로 주인을 ‘심쿵’하게 만든다. 달리는 주유소에서 짧은 목줄에 3년간 묶여 살다 개 농장에 팔리기 직전에 구조됐다.


덩치 큰 중·대형견은
국내 입양 거의 안 돼
해외 입양처 구해도
비용 절감 위해 동행할
이동봉사자 찾기 어려워
개 농장 폐쇄 등 대책 필요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지 말고 입양하는 것


■2마리: 이동봉사자 어디 없나요

진돗개 블랙탄 똘이와 발바리 흑이는 부산의 작은 사설 보호소에서 3년 넘게 살았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이 2018년 1월 경남 양산 개 농장에서 어렵게 구조한 여남은 마리 중 그들이 있었다. 나머지는 하나씩 입양됐지만, 둘은 문의조차 없이 시간이 흘렀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김애라 대표의 마음도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대형견은 국내 입양이 정말 힘들어요. 검은 개에 대한 편견도 있고요. 그래도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죠.”

그러다 최근 기적처럼 미국 LA 지역에서 새로운 가족을 찾을 기회가 닿았다. 10월까지 보내기로 했는데 이번에는 이동봉사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국내 입양이 어려운 중대형견의 해외입양을 돕는 비영리단체 웰컴독코리아에 따르면, 입양을 위한 운송 방법에는 화물로 보내거나 승객이 동반하는 방법이 있는데 비용 차이가 크다. 대형견의 경우 화물로 보내면 마리당 500만 원 가까이 들지만 봉사자가 동반하면 30만 원 정도면 된다.

웰컴독코리아는 2018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약 630마리를 치료, 훈련한 뒤 이동봉사자를 통해 캐나다 등으로 입양을 보냈다. 동물자유연대와 협업해 식용 또는 번식 목적의 개 농장에서 구조한 개들이 많고 학대받거나 방치된 개들을 직접 구조하기도 한다. 지난해는 코로나 때문에 항공편 자체가 없어 보호소에서 대기하는 개들이 많았다. 차차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이동봉사자 구인은 상시 과제다.

웰컴독코리아 이정수 대표는 “끝이 없다는 게 제일 힘들다”고 했다. “지금도 열악한 환경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끝도 없이 죽어가는 유기견들을 생각하면 무기력함까지 느끼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으니까요.” 김애라 대표도 같은 마음으로 똘이와 흑이를 새 집으로 데려다줄 봉사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2500마리: 개 농장 폐쇄 계속돼도

지난달 31일,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와 국제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은 전남 진도군의 한 식용 개 농장을 적발하고 65마리를 구조했다. 구조된 개들 중에는 천연기념물 후보견 등록 진돗개도 있었다. 20여 년간 운영된 농장 도살장 한쪽에는 개목줄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라이프 측은 “도살된 개들이 누군가 기르던 개들이라는 증거이고 반려견과 식용견이 따로 있지 않다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구조된 65마리는 보호소에서 치료와 접종을 받은 뒤 HSI를 통해 북미로 이송돼 입양가정을 찾게 된다. 2019년 폐쇄된 부산 구포 개시장에서 구조된 개 84마리도 지난해 10월을 끝으로 모두 HSI의 도움으로 미국 입양길에 올랐다. HSI는 이와 같이 국내 동물보호단체와 함께한 구조 외에도 2015년부터 자체 개 농장 폐쇄 프로젝트를 통해 17개 농장을 폐쇄했다. 이렇게 6년간 모두 약 2500마리가 HSI를 통해 외국의 새가족을 찾았다.

북미에서는 대형견이 국내와 달리 입양이 잘 된다. HSI는 모두 화물로 운송하는데, 코로나 초기보다 오히려 올해가 더 어려움이 크다. 해운대란으로 항공 화물 물량이 늘면서 운송료 협상은 물론 자리 구하기조차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올해도 5월이 마지막 출국이었는데, 구조된 개들이 국내 보호소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나니 관리와 비용 부담도 만만치가 않다.

HSI코리아 김나라 캠페인 매니저는 “개도 언어의 톤을 알아듣는 동물이다보니 국내에서 입양처를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을텐데 힘든 과정을 거쳐서 전부 해외로 입양되는 현실 자체가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국내 개 농장에서 사육되는 개들이 200만 마리 이상으로 추산된다는 점이다. 대부분 국내 입양이 어려운 대형견이다.



■75마리:구조와 해외입양을 넘어

라이프 심인섭 대표는 “대형견 해외입양은 사실 한국인으로서는 민망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개 농장에서 한 곳당 최대 6000마리씩 무분별하게 번식되고 식용으로 도살되고 유기되는 구조를 개선해야지 언제까지 동물보호단체의 구조와 해외입양에 기댈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전업 지원을 포함해 개 농장을 폐쇄하고 개 식용을 금지하기 위한 중장기 대책이 시급하지만 현실은 한참 더디다.

그래도 김나라 매니저는 “현장에서 희망을 본다”고 했다. 농장주의 전업 약속과 자발적 요청으로 진행하는 개 농장 폐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선 농장주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개 농장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것도 더 많은 시민들이 문제 의식을 갖고 신고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는 이와 같은 인식의 변화가 곧 정부와 정책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앞서 7월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민법 개정안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을까. 심인섭 대표는 구체적으로는 동물생산업 관리를 더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최근 공포된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라 관리인력 기준이 기존 75마리당 1명 이상에서 2024년부터 50마리당 1명으로 개정되지만, 학대와 방치를 막으려면 적어도 30마리당 1명 수준으로 더 강화돼야 한다고 심 대표는 지적했다.

법 개정과 정부 차원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앞서서 지자체의 적극적인 행정도 필요하다. 부산 지역 동물보호단체들의 숙원인 시 직영 보호소 설치가 그 예다.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은 ‘사지 말고 입양하는 것’이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김애라 대표는 “더 많은 시민들이 유기견에 대한 편견 없이 입양을 고려하고 후원이나 봉사로 함께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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