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공간’ 된 초량동 ‘기억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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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인 1951년 당시 14살이었던 소림사 주지 종인스님은 재일학도의용군 30여 명이 부산 동구 초량동에 자리잡은 현재의 소림사로 들어오던 날을 기억한다. 손목이 없거나 발을 저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재일학도의용군은 한국 전쟁 발발 직후 자발적으로 참전했던 재일동포들이다. 전쟁 중 부상 당한 이들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일본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들은 소림사에서 생활하며 일본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다 결국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한국전쟁 참전 재일학도의용군
일본 귀국 못 하고 머물렀던 곳
역사적 기록 보존 노력은 ‘한때’
관리 부실·무관심 속에 방치

한국 전쟁 참전을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재일학도의용군의 거처였던 부산 동구 초량동 ‘기억의 쉼터’가 관리 부실 속에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수풀로 뒤덮인 현재 공간마저 철거 위기에 처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기억의 쉼터는 2014년 동구청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재일동포 출신 재일학도의용군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5평 규모의 공간이다. 동구청은 재일학도의용군들의 생활 공간을 보존하고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자 구비를 투입해 보존했다.

재일학도의용군들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내에서 조직을 만들어 전쟁터로 변한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인천상륙작전, 흥남철수작전, 백마고지전투 등에 참전하기도 했다. 보훈청에 따르면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입국한 642명 중 135명은 전쟁 중 전사했고 265명만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200명 넘는 이들은 일본이 입국을 거절하면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

재일학도의용군은 군번이나 계급이 부여되지도 않았고, 단일 부대가 아닌 수십명 단위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싸웠던 터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동구청은 올해 1월 기억의 쉼터 부지가 동구 일자리복합센터 건립 부지에 편입되면서 관리를 중단했다. 관리가 중단되면서 기억의 쉼터는 잡초가 무성한 흉물스러운 공간으로 방치되고 있다.

인근 주민들조차 기억의 쉼터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정도다. 기억의 쉼터 인근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기억의 쉼터’라는 곳이 동네에 있는 줄 처음 알았다”며 “수풀도 우거져있고 인적이 드문 구석진 곳에 있어 공폐가 부지인 줄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소림사 측은 기억의 쉼터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며 동구청에 관리를 수차례 요청했다. 종인 스님은 “재일동포들의 한이 서린 공간인 만큼 동구청이 나서 기억의 쉼터를 보존할 방법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구청 측은 “사찰 측과 협의해 기억의 쉼터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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