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환적 항만, 환적 화물의 의미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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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찬 부산항만공사 사장

부산항에서 처리되는 환적 화물은 교통에 있어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는 환승 여객과 같다. 미주, 유럽 등 주요 경제권역을 연결하는 대형 선박이 기항하지 않는 중소형 항만에서 소형 선박을 이용해 큰 항만으로 화물을 옮긴 후 다시 대형 선박으로 옮겨 싣는 형태다. 자국의 수출입 화물보다 다른 국가로 오가는 환적 화물의 비중이 높은 항만을 환적 중심 항만이라고 한다. 부산항은 싱가포르항에 이어 세계 2위 환적항만이다. 우리나라 수출입 컨테이너화물의 약 60%가 부산항에서 처리되는 반면 환적 화물은 96%가 처리된다. 부산항 환적 화물의 주요 출발지와 목적지는 중국, 일본, 미국 순이다.

2020년, 부산항에서 처리한 총 컨테이너는 20피트 박스(TEU·Twenty feet Equivalent Unit)로 2182만 개이다. 가로로 연결하면 총 3만 920km에 달하며 지구 3바퀴를 돌릴 수 있다. 이 가운데 환적 화물은 1202만TEU로 전체 컨테이너의 55%에 해당한다. 만약 환적 화물이 없다면 부산항은 세계 7위 항만에서 17위가 될 것이다. 하역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산업 수요도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환적 화물에 대해서는 수출입 화물보다 하역요금을 낮게 책정하거나 환적 화물을 운송하는 선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화물을 유지하고 유치하기 위해서다.

환적화물에 대해 부정적 평가도 있어 왔다. 양적 성장만 추구한다는 소극적 비판에서 돈 주고 사 오는 화물이라는 극단적 비판까지 있다. 환적화물 유치의 당위성과 효과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필요한 이유이다. 환적 화물의 직접적 경제효과는 11만 4490원, 간접적 경제적 효과는 3만 6404원으로 추정된다. 환적 화물 20피트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약 15만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이를 부산항에 적용하면 1조 8000억 원이 넘는다.

환적 화물 유치에 있어서 부산항은 주변 항만과 비교해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부산항은 전 세계 100개국의 500여 개 항만과 연결돼 세계 2위의 촘촘한 해상운송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하역 연결성 측면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환적항만은 철도,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모든 교통수단이 한곳에서 바로 연결되는 환승센터와 같이 소형선박과 대형선박의 하역 작업이 동일한 터미널에서 이루어져야 하나 부산항은 반쪽짜리 환승센터와 같다. 항만이 크게 북항과 신항으로 나눠져 있고 동일 항만 내에서도 여러 개의 터미널로 나눠져 있다. 중국 항만에서 미국으로 가는 화물이 부산 북항에 내려져 트럭운송으로 다시 신항으로 이송된 후 미국으로 가는 선박에 실리거나 부산 신항에 내려진 경우에도 1부두에서 내려진 후 3부두로 다시 이송돼 최종 선박에 실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항만의 고객인 선사 입장에서는 셔틀 운송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마치 KTX를 타기 위해서 지하철을 타고 다시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 격이다. 부산항의 가장 큰 단점이자 경쟁력 저하의 핵심 요인이다.

왜 이럴까. 항만이 환적 화물 처리에 맞지 않게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수출입 화물은 우리나라가 기종점이기 때문에 어느 터미널에서 하역이 이루어지든지 상관없지만 환적 화물은 다른 선박으로 옮겨 실어야 하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이 동일 터미널 내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의 터미널로 운영되어야 할 부산 신항에는 5개의 터미널이 있고 민간이 개발하고 운영하는 민자 부두도 있다. 이것은 잘못된 항만개발 정책의 결과이며, 과거 항만물류 부문 집단지성의 한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추진되는 터미널 운영사 통합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개발 중인 서 측 컨테이너부두와 앞으로 개발될 제2신항(진해 신항)은 단일 터미널 운영체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왜곡된 부산항의 환적 화물 하역체계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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