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소재, 서구 문명 음험한 생리·권력구조 파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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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도서관/앨런 홀링허스트

은 문제작 장편소설이다. 동성애를 소재로 서구문명의 음험한 생리와 권력구조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대작이다. 옥스퍼드대 출신의 영국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67)가 쓴, 영국 문학 사상 최고의 동성애 소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영국 사회 전반, 근대 서구문명의 치부에 대해 커다란 문제를 제기하는 걸작 풍의 장편이다. 물론 그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英 귀족층이자 ‘게이’인 윌리엄과 찰스
제국주의 침탈 역사·엽기적 삶 등 보여줘

1983년 마거릿 대처 총리 당시, 20대 중반의 윌리엄은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80대 노인 찰스를 구한다. 이 일이 계기가 돼 윌리엄은 찰스의 전기를 쓰게 된다. 윌리엄과 찰스, 두 사람은 모두 영국 사회의 귀족 특권층으로 또한 게이다. 둘은 수영을 좋아하고 예술을 즐기는 등 취미조차 상당히 비슷하다.

소설은 윌리엄이 찰스의 생애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영국 사회에서의 동성애 역사, 거기에 스며있는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윌리엄은 찰스에게서 동성애자의 비애감을 느끼지만 나중에는 그의 이중성에서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악마적인 엽기성을 느끼게 하는 찰스의 삶이나 행동을 윌리엄 자신도 그대로 살고 있으며 똑같이 하고 있다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몇 가지 층위가 정교하게 겹친다.

첫째 80대 노인 찰스는 예전에 식민지에서 제국의 경영자로 일하면서 흑인의 순진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게 동성애로 이어진 것이다. 지금은 불우한 젊은이들을 위해 큰 재산을 기부하는데 그것은 결국은 동성애적 탐닉을 위한 구실·보호막이다. 찰스의 음험한 삶의 뿌리는 결국 제국주의 시대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찰스와, 윌리엄의 조부가 얽힌 충격적인 전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윌리엄의 조부는 1950년대 검찰총장으로서 동성애 박해에 앞장서면서 찰스를 본보기로 감옥에 보낸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덕분에 윌리엄의 집안은 귀족이 되고 특권을 누리고 있다. 요컨대 동성애자를 탄압한 공 때문에 그 손자 윌리엄이 방만한 동성애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윌리엄의 친구 제임스가 공공장소에서 동성애를 시도했다며 체포되는데 체포한 경찰이 윌리엄과 동성애를 나눈 이라는 것이다.

역사 권력 부 계층 지배 종속, 그리고 비애 혐오 배신 추악 등이 뒤죽박죽 얽히면서 영국 근현대사와 서구문명의 치부, 나아가 얼룩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묘파해내고 있는 것이다. 혐오스러운 그 모습이 결국 나의 모습이라는 자각과, 서구 근대문명의 근간인 강자와 다수 중심의 세계관과 권력구조에 대한 성찰이 한데 버무려져 있다.

이 소설의 풍자 또한 만만찮다. 소설 중심인물인 ‘찰스’와 ‘윌리엄’은 영국 왕세자 찰스와 왕위 계승 다음 순위인 그의 장남 윌리엄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왕위 계승 1, 2위의 이름을 가져와 근엄한 영국 사회와 영국 역사의 이면에 대한 묵직한 풍자를 하고 있다.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전승희 옮김/창비/504쪽/1만 68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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