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진동·질주…‘재개발 광풍’에 휩쓸려 가는 학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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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내 재개발 정비사업이 본격화하면서 부산진구에서는 3개 고등학교가 동시에 학습권 침해와 통학로 안전 문제를 토로하고 있다. 일부 구역은 ‘교육환경영향평가’ 도입 전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터라 별다른 제재 방안도 없는 상황이다.

2일 오전 10시께 찾은 부산진구 양정동 양정고등학교. 교문 앞으로 20t에 달하는 덤프트럭이 굉음을 내며 도로를 내달렸다. 이곳은 매일 아침 양정고와 부산진여자고등학교, 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등 1000명 이상이 지나는 통학로다.

부산진구 ‘양정1·2구역’ 동시 시행
양정고·부산진여고 직접 영향권
교문 바로 앞 공사 출입구 ‘위협’
통학로 주변 자재까지 널브러져
제도 도입 전 인가, 제재도 막막

그러나 교문까지 연결되는 제대로 된 보행로는 없다. 공사 차량이 지나는 도로 옆에 임시 펜스로 엮은 길이 임시 통행로가 전부다. 200m 남짓한 통행로 주변으로는 공사장으로 향하는 트럭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교문과 불과 10여m 떨어진 통학로 주변도 공사 자재가 널브러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 이예은(18) 양은 “덤프트럭이 미끄러지거나 옆으로 넘어져 통학로를 덮치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며 등하교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들 학교 주변으로는 2200세대, 아파트 22개동 규모의 양정1구역 정비사업이 진행 중이다. 재개발 조합은 지난해 노후 주택 철거를 마무리하고, 이달 안에 터파기 등 본격적인 공사를 예고했다. 양정1구역 옆으로는 양정2구역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곳은 부산 동의의료원과 세정고등학교가 공사 영향권에 들어갔다. 양정동 일대 학교마다 학습권 보장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학교는 공사 현장과 불과 10여m 떨어진 양정고다.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학교 건물에 균열이 관찰되고 있다. 양정고 이성학 교장은 “조합이 학교 정문 200m 이내에 공사장 출입구나 아파트 출입구 설치를 지양하는 조건으로 사업시행 인가를 받았는데, 현재 교문 바로 옆에 공사장 출입구가 나 있다”며 “본격적인 아파트 신축 공사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수년간 두려움에 노출된 상태로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데, 교육 기관과 조합 측이 미리 대책을 세우지 않아 애먼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분개했다.

이 같은 학교 측 반발에 양정1구역 조합 측은 학교에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최대한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양정1구역 김미영 조합장은 “학교 측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학습권 침해와 학생 안전 문제가 없도록 시공사와 머리를 맞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합 측의 해명과는 달리 이미 양정고는 올해만 3차례 조합 측과 부산진구청, 부산시교육청에 협조 공문을 발송했지만,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부산진구청과 시교육청도 뾰족한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중재만을 권유하고 있다. 이 정비구역이 이미 15년 전 재개발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교육환경영향평가 심의 대상이 아닌 데다, 이미 현장 공사가 진행되는 등 본궤도에 올랐다는 게 이유다.

2017년부터 시행된 교육환경영향평가는 학교 인근에서 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이뤄질 경우 사업시행인가 전에 시·도교육청 내 교육환경보호위원회의 심의를 받는 절차다. 학교 주변 유해시설 사전 차단, 소음·진동 교육환경 검토 등 교육환경 보호를 위한 평가가 이뤄진다. 그러나 양정고 등과 인접한 양정1구역 주택재개발사업은 그보다 한참도 전인 2006년 사업시행 인가를 받았다. 교육환경영향평가 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부산진구청에 따르면, 양정2구역도 2009년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교육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시내 재개발 붐이 일면서 양정고의 사례처럼 학교 주변에 신축 공사장이 속출하고 있지만, 부산시교육청은 교육환경영향평가 재심의가 불가능해 교육환경 보호를 위한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교육환경영향평가에서 제외된 사업 현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부산시교육청 지원과 이하진 팀장은 “세대나 층수, 면적에 관한 변경사항이 없다면 이미 인가를 받은 재개발사업에 대해 교육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하지만 재개발 현장이 학교 주변에 있어 학생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철저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곽진석·손혜림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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