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기억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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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문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국가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아테네 최후의 전성기를 이끈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사자 추도연설에서 “아테네는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을 국립묘지로 선정해 전몰자들을 안장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비를 국고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몽골 대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도 칙명을 통해 “전사한 장졸들의 자녀들을 궁으로 데려와 짐의 자녀와 똑같이 양육하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전쟁 초기, 부산 인근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면서 많은 군인이 전사했다. 정부는 부산의 금정사와 범어사에 ‘순국 전몰장병 영현 안치소’를 설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1956년 4월 13일 ‘국군묘지령’을 통해 동작동 국군묘지를 설립하고 한국전쟁 전몰 군인과 학도의용군들을 안장하기 시작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묘지령을 제정한 지 일주일 뒤 ‘6월 6일 현충기념일’을 지정했다. 국군묘지로 시작했던 현충원은 1964년 3월 독립운동가 김재근, 한흥근 선생을 시작으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국가유공자도 모시게 되면서 국립묘지로 승격했다.

오는 6일은 제66회 현충일이다. 조국의 부름을 받아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전몰장병, 유가족에 대해 국민이 영원히 기억해야 할 부채가 있다고 매년 선언하는 날이다. 생명으로 대신한 그 빚은 아무리 갚아도 다하지 못할 무한의 빚이며 나라가 발전하면 할수록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국가의 도덕적 책무기도 하다. 선진국들은 전쟁 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역사 인식 간극을 줄이기 위하여 다양한 추모 활동도 벌이고 있다.

매년 6월 6일 국립현충원에 가면 ‘수많은 죽음 위에 대한민국이 서 있고, 그 역사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게 된다. 전쟁의 역사와 충돌의 매듭이 간직돼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출신 정치사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근대국가에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단일의 정체성으로 결속하는 문화의 상징으로 무명용사기념비나 무덤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역사에 대한 국가나 사회의 기억과 회상은 국민 통합에 매우 중요하다. 2021년 6월 6일, 역사를 함께 애도하자. 극심한 분열의 정치·사회 상황에서 우리가 같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는 시간이기를 기대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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