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09 >아쉬워라 표준사전(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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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말뜻은 변한다. 예전에 생각한다는 뜻이었던 ‘사랑하다’가 이젠 그리워하거나 아끼거나 귀히 여긴다는 뜻으로 바뀐 것이 바로 그런 예다. 말이 살아 있는 유기체여서 생기는 일이다. 이건 뭐 어렵게 생각할 게 없는 것이, 심혈관 치료제로 개발된 비아그라가 지금은 거의 발기부전 치료제로 쓰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뿐 아니다. 말이 가진 느낌도 변한다. 지난해 처음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일부 언론 따위에서 썼던 ‘우한 바이러스’라는 말. 당시엔 이 말이 정부를 비판하는 ‘소신 있는’ 표현이었지만, 요즘도 ‘우한 바이러스’라고 쓰는 사람을 보자면, 뭔가 꼴통 같다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고집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게다가 이 말은 미국 등지에서 한국계를 포함한 동양계에게 가하는 폭행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뭐,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이렇게 변하는 말뜻을 좇아 국어사전은 부지런히 바뀐다. 몸집이 커서 움직이지 않는 듯해도 물속에서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것이다. 개정판은 대개 새로 찍어 내야 하는데, 국립국어원이 펴내는 (표준사전)은 초판을 찍은 뒤 종이사전을 포기하고 인터넷에 올린 웹사전만 유지되기 때문에 고치기가 손쉽다. 해서, 국립국어원은 분기마다 ‘표준국어대사전 정보 수정’을 한다. 물론 비공식으로는 수시로 고치기도 하지만…. 물론, 이런 신속한 움직임은 칭찬받을 일이다.

한데, 언중의 말글살이를 지나치게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다. 낮은 데로 흘러가는 물처럼, 입말은 쉬운 발음을 좇거나 편한 대로 쓰기 마련이어서 여러 법칙에서 벗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어원이 분명한 말인데도 잘못 쓴 언중의 입을 따라가면 어색한 말이 될 수 있을 터. 아래는 1999년 발간한 종이 표준사전에 실린 뜻풀이다.

*출사표(出師表): ①중국 삼국 시대에, 촉나라의 재상 제갈량이 출병하면서 뒤를 이을 왕에게 적어 올린 글. 우국(憂國)의 내용이 담긴 명문장으로 유명하다. ②출병할 때에 그 뜻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리던 글.

처음엔 이랬는데, 개정판 격인 웹 사전에서는 관용구 2개가 추가됐다.

*[관용구]출사표를 내다: 경기, 경쟁 따위에 참가 의사를 밝히다. =출사표를 던지다.

*[관용구]출사표를 던지다: 경기, 경쟁 따위에 참가 의사를 밝히다. =출사표를 내다.(이번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는 모두 7명이다.)

하지만, 이 ‘출사표를 던지다’는 아무래도 좀 무례해 보인다. 뜻풀이에서 보듯이 원래 출사표는 임금에게 올리던 글. 요즘 선거로 보자면 출마 전에 유권자에게 올리는 글인 셈인 것. 널리 쓰인다고 해서 반드시 사전에 실어야 하는지,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말이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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