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변하되 변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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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지난달 28일 당대표 예비경선에서 중진 의원 5명과 초·재선 의원 2명을 제치고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51%의 지지, 당원 여론조사에서도 31%의 지지를 얻었다. 대파란이다. ‘0’선의 30대 원외 정치인이 보수정당 대표를 해 보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우리 정치 지형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민심’과 ‘당심’이 여기에 반응했다. 이준석 돌풍 앞에서 당내 계파·신구·세대 간 대치 전선도 일거에 무너졌다. 기득권 세력의 물갈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라는 분석이 앞다퉈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 이준석 돌풍
기득권 물갈이에 대한 열망 표출

여당은 자성의 계기 못 찾고 방황
폐쇄성 벗고 개방·다양성 품어야

기본적 가치와 원칙 지키면서
사회 통합 방법론 치열한 고민을



과연 11일 본경선까지 돌풍이 이어질 것인가. 국민의힘 당심에 달려 있다. 국민의힘은 수도권과 영남에 몰려 있는 책임당원의 비중이 압도적인 정당이다. 본경선에선 당원들, 특히 영남권 고령자들의 ‘진짜’ 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전 최고위원이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갖고 보수정당을 대변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정권 탈환이야말로 국민의힘 지상과제다.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야 할 판이다. 이준석 돌풍 뒤엔 어떻게든 ‘필승 카드’를 선택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이준석 현상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보는 이에 따라 평가가 천차만별인 사안이다. 그런데 지금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까닭은 집권 여당의 대비적 행보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하며 유례없는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1년여 만에 민심의 차가운 표변 앞에 서 있다. 국민이 몰아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정책 실패를 거듭한 탓이다.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의 충격적 참패, 그리고 추락하는 각종 여론조사 수치가 이를 방증한다.

그런데도 집권 여당은 냉정한 평가를 바탕으로 한 쇄신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진보 정권이라면 개방성과 다양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오히려 폐쇄성을 강화하는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일부 강경파가 여론을 만들고 다수가 끌려가는 구조 속에서 당심이 민심과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다. 현 정부는 다양한 진보 세력이 연합한 정권이다. 그런 만큼 보다 폭넓은 의견 수렴이 중요한데도 이에 소홀한 듯하다.

소수의 주도 세력이 있다면 강력한 추진력이라도 보여 줘야 하는데 각종 개혁 과제의 성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어떤 비판에 직면하면 그것을 돌파하기보다는 수정하는 쪽으로 길을 바꾼다. 선거를 의식해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탓이다. 핵심 지지층도 잃고 비지지층도 붙잡지 못하는 행태다.

지금 뼈아픈 자성의 태도로 돌아봐야 할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우선 흔들림 없는 원칙의 견지다. 진보적 정치의식을 바탕으로 아직 이루지 못한 우리 사회의 개혁 과제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정책의 당위성을 끈기 있게 끌고 갈 정교한 논리가 필요하다. 기성 체제의 관성과 개혁을 원치 않는 세력의 저항을 흡수할 방법론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서구에서는 정권 운명을 좌우할 민감한 문제라도 정당이 지향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권을 내줄 각오까지 하면서 정책을 추진한다. 그 결과로 선거에 패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받아들인다.

또 하나는 중도층을 껴안는 노력이다. 과거 프랑스 사회당 정권 역시 권력이라는 시련을 거치면서 파김치가 된 역사가 있다. 1993년 총선에 이어 1995년 대선에서 사회당이 패배했을 때, 당시 프랑스 최대 일간지 <르몽드>의 발행인 장 마리 콜롱바니는 그 원인을 이렇게 지적했다.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 전범도, 고유한 가치도, 도덕적 자산도 없다.”(<좌파는 사회당 이후에도 살아남을 것인가>) 그러면서 제안한 것이 좌파가 중간 계층의 진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외된 소수만의 옹호자로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누구보다 지금 한국의 집권 세력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유’와 ‘개인’ 같은 키워드를 중심에 놓고 중도층을 적극 껴안는 전략을 다시금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진보와 민주주의의 앞날을 독점하겠다는 생각 대신 여러 세력, 여러 계층과의 정당한 연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보수우파가 실수하기만 기다리는 관망주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앞으로 9개월, 제8회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1년 남았다. 구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진보든 보수든 변해야 살아남는다. 아니, 진보와 보수라는 패러다임 자체가 낡은 것일 수 있다. 이준석 현상이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미 진영의 경계는 흐릿해진 상태다. 승자는 결국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는 쪽이 될 것이다.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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