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잠 못 드는 여름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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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연 사회부 차장

지구는 정말 괜찮은 걸까? 여름이 되면 새삼 지구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맨몸으로는 도저히 받아내기 힘든 한낮의 뙤약볕, 동남아에서나 만났던 국지성 폭우, 자정이 되어도 식을 줄 모르는 열기에 잠 못 드는 밤이면, 그제야 지구의 안부가 슬그머니 걱정됐다. 내가 더우니 지구도 덥겠다는 일차원적인 우려다.

코로나19로 일시적인 탄소배출 감소 효과 경험
동시에 실직·이동제한 등 심각한 고통도 겪어
2050 탄소중립 위해서는 현실적인 로드맵 필요

산업화 이후 지구 기온은 1℃ 가량 올랐다 한다. 겨우 1℃라니, 하루 10℃ 가까운 일교차도 겪는데 뭔 대수냐 싶었다. 부끄럽지만, 무식해서 대범(?)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산업화 이전 만년 동안 오른 기온이 0.5℃ 정도였으며, 마지막 빙하기였던 1만 8000년 전 지구 기온이 지금보다 불과 6℃ 낮았다는 연구를 접하고서 말이다.

무식을 깨달은 것은 코로나19 덕분이었다. 설마 이런 바이러스를 또 겪어야 될까? 의문과 걱정에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봤다. 이 질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인류가 예전보다 더 자주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를 것이라는 비관적인 답을 내놓는다. 주된 근거는 심각한 환경 파괴다. 동물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와 인류 사이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자연이 급속히 파괴되면서, 인류가 바이러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출몰과 환경 파괴의 관련성은 놔두고서라도, 환경 파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브라질의 아마존 열대우림은 4월에만 축구장 5만 8000개에 해당하는 580.5㎢가 벌채로 사라졌다. 지난해 여름(9월) 북극 얼음의 평균 면적은 392만 5000㎢로, 40년 사이 48. 9% 감소했다는 우리나라 극지연구소 결과도 있다.

이런 심각한 수치들은 그동안 수없이 접했다. 너무 많이 들어서 무감각했고, 한편으로는 종말론적 전망에 냉소했다. 지구 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 해수면 상승과 사막화가 진행되어 인류는 터전을 잃고, 화재와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 재해와 식량난으로 고통을 겪다 종말을 맞는다는 최악의 시나리오. 반복해서 들을 때마다 어릴 적 경험했던 어른들의 ‘선한 협박’이 떠올랐다. ‘거짓말 하면 지옥 간다’류의, 틀릴 수도 맞을 수도 있어 한귀로 흘려들었던 이야기 같다.

실제 환경론자들 사이에서는 종말론적 전망이 지구를 위해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인다.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울한 지구의 미래 이야기가 되풀이 되는 것은, 지구의 상태가 그만큼 다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가 지난해에 출현한 것은 어찌 보면 절묘한 타이밍이다. 각 나라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다짐한 1997년 교토의정서 채택 이후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2015년 파리기후협약도 2021년 시행을 코앞에 뒀지만 미국의 탈퇴로 무용지물 위기에 처한 그때, 코로나19는 그동안 인류가 하지 못했던 전 세계 ‘셧다운’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공장이 멈추고 이동이 줄어들자, 뿌옇던 하늘이 다시 제 빛깔을 드러냈다. 미세먼지도 줄었다. 사람들은 짧은 순간이나마 탄소배출이 줄면 생기는 일들을 겪었다. 동시에 탄소배출 중단은 극심한 고통이 따른다는 것도 경험했다. 자본주의에 기대어 사는 우리에게 탄소배출 중단은 실직이나 이동 제한 등 심각한 자유의 제한과 관련되어 있다. 코로나19는 진지하게 탄소배출 감소를 원한다면, 이 문제와 정면 대결을 벌여야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지난 3월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실현하기 위한 이행 계획을 발표했다. 탄소중립은 최대한 탄소배출을 줄이고, 배출된 탄소는 기술로 흡수해 탄소배출 제로 수준으로 만드는 계획이다. 지난달 30~31일 열린 ‘P4G’ 서울 정상회의에서 정부는 환경 문제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했다. P4G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12개 국가와 시민단체들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논의하는 글로벌 협의체다.

전폭적인 재생에너지 산업 지원, 무공해차 30만 대 보급, 공공기관 건물의 탄소중립 등이 주요 계획이다. 친환경 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서 우선권을 쥐겠다는 다부진 각오는 보이지만, 탄소배출 감소 과정에서 불거질 고통에 대한 현실적 예측이나 대비는 찾아보기 어렵다. 극단적 인류 종말의 비관론만큼, 신 산업 육성의 희망만 가득한 시나리오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

유난히 비가 잦았던 5월을 지나, 이달 말이면 장마가 시작될 것이다. 일본은 이미 지난달 장마가 시작됐다. 65년 만에 가장 이른 장마라고 한다. 예전 같지 않은 날씨를 모두 지구 종말의 예고편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올해 여름도 열대야로 뒤척이는 날이면 잠든 아이들 얼굴을 보며 심란할 것 같다. 지구의 불안한 미래와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대책 없는 낙관론 사이에서.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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