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K-반도체와 경부성장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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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래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하나의 상품을 고르라면 그것은 단연 반도체가 될 것이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수출에서 1위를 점하기 시작한 반도체는 근년에는 수출 비중 20%를 오르내리는 경이적인 기록을 보여 주고 있다. 아마도 반도체가 세워 나가고 있는 대기록은 전무후무한 것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가 세운 ‘K-반도체 전략’ 바람직
지역 안배 없고 수도권 중심 아쉬워

전자산업 요람 경북 구미공단 제외
부산 파워반도체 지원 방안도 없어

한국경제 뒷받침해 온 ‘경부성장축’
더는 위축 안 되도록 대안 마련해야


부산의 대표적인 수출품이었던 합판도 대단했던 시기가 있었다. 4년 연속 우리나라 수출의 10% 이상을 점하였고, 1968년에는 그 비중이 13%에 이르기도 하였다. 또 다른 부산의 주력 수출 상품에 신발이 있었지만 전성기 신발 수출액은 우리나라 수출의 5% 정도에 불과했다. 가끔 합판과 신발을 반도체와 비교하면서 과거를 추억하고는 하지만 반도체는 산업발전의 단계를 훨씬 넘는 압도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반도체를 대대적으로 더욱 육성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얼마 전 있었다. 향후 10년 동안 경기도와 인접한 충청도 지역에, 민자가 중심이긴 하지만, 510조 원 이상을 투입하여 세계 최대의 반도체 공급망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른바 ‘K-반도체 전략’이다. 이를 위해 반도체 인력 3만 6000명도 육성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반도체 공급 사슬이 무너져 모든 산업에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고, 더욱이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패권을 놓고 새로운 판을 짜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큰 계획을 밝힌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큰일들이 꼭 ‘위기’라는 상황에서 나오고 그것도 수도권 중심으로 흘러가야만 하는 것일까? 1997년 말 외환위기가 왔을 때도 그 위기 상황 때문에 지역은 속수무책으로 구조조정의 피해를 우선적으로 감당했던 아픔이 있다. 지방은행의 대학살로 불리는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역에 본점을 둔 금융기관들이 먼저 정리의 대상이 되었다.

이번 반도체 육성 정책 또한 위기 상황을 강조하면서, 당연한 것처럼 수도권 중심의 정책으로 발표되고 있다. 서울 남쪽의 판교와 용인 그리고 화성을 중심으로 충청까지 포괄하고 있는 커다란 지역이 대규모 반도체 벨트에 편입되고 있는데, 이 안에 과거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요람이었던 구미공단은 들어가 있지 않다. 부산시와 지역의 산업계가 역점을 두고 육성 중인 파워반도체에 관해서도 별도의 지원 방안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철저하게 수도권 중심의 산업지도를 그리고 있다.

대대적인 산업단지를 지정했던 1970년대 중화학공업 때에는 어찌하였는가? 자동차와 전자, 조선 그리고 화학 및 철강 등에 중점을 두었던 당시 정부는 구미에 전자산업, 창원과 울산에 기계와 화학 그리고 여천에 화학을 주력산업으로 배치했다. 인근의 거점대학에 인력 양성 기반을 위한 특성화 공대를 운영했다. 경북대가 전자, 부산대가 기계, 전남대가 화공에 특화된 학부를 두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에서 배출된 인력은 기업 발전과 함께 대학 발전의 선순환을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균형발전을 가져왔다. 당시에는 이것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지역에 산업단지를 분산 배치하고 여기에 인력 양성을 결합했던 모델은 지금 시점에서 더욱 되돌아보게 하는 균형발전 전략이었다.

이런 틀에 비추어 볼 때 코로나 위기 상황을 틈타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 육성 전략을 선언한 것은 앞으로 지역의 위상에 큰 타격을 줄 게 분명하다. 우선 산업생산액에서 격차가 더 커질 뿐만 아니라 향후 대규모로 진행될 인력 양성에서 지역의 소외가 더욱 명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우수한 입학생의 수도권 집중으로 우열이 뚜렷하게 구별된 상황에서 반도체와 같은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사업에 지역대학들이 끼어들 틈은 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반도체가 아니어도 지난 20세기 한국경제 성장을 뒷받침해 왔던 경부성장축은 오래전부터 조금씩 약화하기 시작했다. IT 산업이 발전하고 중국과 교역이 늘어나면서 수도권과 서해안으로 경제의 중심이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흐름은 최근 들어 아주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인구 동향에 반영되고 있다.

주력산업이 빠르게 무너진 부산에서는 인구의 역외유출이 유입보다 많게 된 지 이미 30년이 지났다. 부산과 함께 영남의 중심도시인 대구와 울산에서도 2017년부터 전출 초과인구 규모가 1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대구의 전출 초과인구는 지난해 부산보다 많았다. 경남과 경북에서도 지난해 1만 명이 넘는 전출 초과가 발생했고, 이 또한 부산보다 큰 규모였다. 전례 없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나온 K-반도체 계획이 지난 1세기 동안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끈 틀이었던 경부성장축의 와해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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