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타이레놀 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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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코로나19가 처음 확산 단계로 접어들었을 때 전국에서 벌어졌던 진풍경을 잊을 수 없다. 날마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온 나라가 방역 위기에 처했지만, 믿을 것은 오직 개인위생과 마스크밖에 없던 때였다. 평소 심상히 여겼던 마스크가 생명줄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라도 마스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약국마다 장사진을 쳤다. ‘귀하신 몸’이 된 마스크는 졸지에 수출금지 품목으로 지정돼 국가 전략물자 수준의 대우(?)를 받았고, 대통령까지 제조업체에 직접 생산을 독려할 정도였다. 코로나19가 낳은 웃지 못할 풍경이었다. 실제 2020년 1월 당시 137곳에 불과했던 전국의 마스크 제조사는 올 3월엔 10배가 넘은 1470곳으로 급증했다. 덕분에 코로나19가 여전한 지금, 마스크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다. 대다수 국민에겐 마스크를 둘러싼 1년 전 상황이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마스크 고비를 넘기고 이제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사람들은 드디어 코로나19 탈출의 희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특정 제약사의 해열진통제가 또 논란이다. 바로 ‘타이레놀’을 둘러싼 품귀 현상이다.

1년 전 마스크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백신 접종자가 늘면서 덩달아 이 약품의 수요도 급증세라고 한다. 접종 후 예상되는 발열이나 근육통 등 경증 이상 반응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백신 접종을 위한 준비물로 수요가 크게 늘었다. 불편한 증상이 있으면 이 약품 복용을 권장하는 듯한 방역 당국의 언급도 한몫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접종 전에 미리 이 약품을 구해 두려는 사람이 몰리면서 연전의 마스크 대란을 떠올리는 성급한 호사가도 등장했다.

그러나 약학계는 타이레놀 품귀 논란을 지나친 공포와 경계심이 낳은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 약품에 함유된 성분이 똑같이 포함된 다른 약품이 시중에 충분해 꼭 특정한 제품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국내에 백신 접종 후 복용 가능한 해열진통제가 약 70여 종 유통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효능을 발휘하는 약제 성분보다 특정 제품명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애초에 방역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국민이 또 놀라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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