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방 이건희 미술관 반대’ 문화부, 이러고도 균형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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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기증으로 추진되는 미술관 설립과 관련된 국회 서면 질의에 대해 수도권 유치 입장을 공식 답변 문서로 전달했다는 소식은 귀를 의심케 한다. 문체부는 답변서에서 ‘지자체에 미술관을 건립해도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왜곡된 인식을 드러냈다. ‘지자체 유치전이 과열될 경우 기증자의 취지나 국민의 문화 향유 접근성 제고라는 중요한 원칙과 방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아전인수 격 해석까지 덧붙였다. 지역민은 국민이 아니란 뜻인지, 지역에는 문화 향유의 권리조차 없다는 것인지, 한 나라의 ‘문화’ 행정을 책임진 부서의 ‘비문화’적 행태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수도권 문화계 갈등·분열은 모른 체
인구만 많다고 유치 ‘행정 편의주의’

문체부가 이건희 미술관 지방 유치전의 과열 양상을 지적하지만, 유치 경쟁의 큰불이 붙은 곳은 바로 수도권이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 이후 정부가 미술관 신설을 검토하자 서울의 미술계 인사들이 대거 모여 근대 미술품을 모은 국립근대미술관 신설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삼성가가 기증한 미술품 중 근대 미술품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근대 미술품을 합쳐 여기서 관리하자는 요구다. 그러자 과거 ‘부실한 국책 미술관’이라는 오명을 쓴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 약화를 걱정한 이들은 근대 미술품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통합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또 다른 여론을 만들었다. 수도권 안에서도 서로 가져가겠다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문체부가 수도권의 이런 갈등과 분열은 못 본체하면서 지방 유치를 반대하는 건 아무런 명분도 근거도 없는 것이다.

당연한 듯 수도권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점에서는 문화의 균형발전 원칙마저 내팽개친 처사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문화에 대한 지자체의 열망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지역의 유치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국가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최선의 입지를 선정하는 것이다. 비수도권에 대한 배제는 귀찮고 힘들어서 쉽게 쉽게 가려는 이른바 ‘행정 귀차니즘’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무엇보다 단순히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에 가면 그만이라는 식의 행정 편의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출발한 미술품은 점차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음을 인류 역사는 보여 준다. 문화는 대중들이 누구나 원하면 언제든 향유하고 감상할 수 있는 공공의 자산이 돼야 한다. 중앙 집중보다는 다양한 지역으로의 분산이 ‘공공’이라는 이름에 값한다. 그런 점에서 이건희 미술관은 지역에 유치돼 문화의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의의를 획득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미술품이나 미술관 부지를 쪼개고 나누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이는 접근성 제고와 기증자의 취지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다. 지금 문화 행정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는 인식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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