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에버기븐호가 수에즈운하에 남기고 간 것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최진철 한국해양대학교 교무부처장 항해융합학부 교수

지난 3월 말 6일 동안 지구상 가장 중요한 혈관이 막혀버리는 바람에 온 세계가 물류대란에 고통받았다. 이 예기치 못한 혈전 현상의 주인공은 바로 길이 400m, 폭 60m 지구상 현존하는 가장 큰 컨테이너선 중 하나인 ‘에버기븐’호였다. 다행히 혈관경색에 대한 치료는 6일 만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해상재앙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원인 규명이 명확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에버기븐호는 1만 8300개의 컨테이너를 적재한 상황이었고 선박흘수는 약 16m 정도였다. 수에즈운하 수심이 24m이니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딱 이 정도 수심에 수에즈운하는 사막의 모래를 121m 폭으로 파내어 준설되어 있다. 수에즈 항로 양쪽으로는 모래 제방이 솟아있다. 다르게 보면, 이런 물리적 조건에서 세계 최대 규모 메가 컨테이너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적 여유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약 40m 높이의 컨테이너 벽에 강한 횡풍이 불면, 운하 한가운데에서 항로를 유지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좌초 당일 에버기븐호는 조타에 실패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 강풍이 배의 진로에 확실히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당시 녹화 영상을 보면, 사고 당일 오전 7시 40분(현지시간) 에버기븐호는 운하 진입 직후 서서히 서쪽 모래제방 쪽으로, 즉 배의 진행방향으로 보면 운하의 좌측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박운항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선박의 한쪽 현이 제방에 가까워질 때, 선박의 속도가 빠를 시 선수는 안벽 밖으로 반발하고 선미가 제방으로 붙으려는 현상을 일컫는 ‘제방효과(Bank Effect)’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에버기븐호와 같은 초대형 선박이 배의 크기에 비해 턱없이 비좁은 수에즈운하를 운항하면서 물을 쟁기질 할 때 제방효과의 힘은 특히나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배가 제방 한쪽에 접근하면, 선체에 의해 변위된 물기둥 쪽의 공간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변위된 물은 선박의 측벽과 제방 사이에서 점점 더 빨리 흐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1838년 스위스 물리학자 다니엘 베르누이가 발견한 ‘베르누이의 정리’이다.

베르누이 정리를 기반으로 정리하자면, 서로 다른 압력 조건으로 인해 배는 어쩔 수 없이 시계방향으로 항로를 벗어났다. 즉, 처음에는 선수가 운하의 서쪽 제방으로부터 멀어졌고, 반대로 선미는 제방을 향해 움직였다. 배의 세로축은 배의 중앙에 있는 가상의 세로축을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회전했다. 20도 회전만으로도 세계의 혈관을 차단하는 재앙은 충분했다. 10노트 이상 속도와 22만t 이상 선박의 관성력으로 인해 에버기븐호의 볼록한 선수가 수에즈운하 동쪽 제방면 모래톱에 처박혔던 것이다. 반면 에버기븐호 선미는 반대편 서쪽 제방에 좌초되었다. 그 결과 배는 운하의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대각선으로 누워 아시아-유럽 최단 항로이자 중동발 석유수송 주요 항로를 막아버린 것이다.

대형선박은 많은 양의 물자를 한 번에 수송할 수도 하지만, 이번 사고같이 항로를 단번에 차단해버릴 수도 있다. 돈에 눈먼 선사들은 점점 더 길고 점점 더 넓은 선박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만들어내기 바쁘다. 우리 조선업계 역시 2만 3000여 개 이상의 컨테이너 적재가 가능한 초대형 선박 건조계약을 수주했다고 자랑스럽게 보도한다. 하지만 에버기븐호가 우리에게 남긴 정말 중요한 메시지는 세계 경제 혈관을 운항할 또 다른 초대형 선박이 이와 유사한 엄청난 피해를 불러오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고의 예방을 위해 선장에게 베르누이 정리를 철저히 교육할 것이 아니라 초대형 선박처럼 인간의 탐욕이 가져올 사고의 위험성을 가르쳐야 하지는 않을까.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