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하이델베르크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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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부 선임기자

6년 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갔을 때의 일이다. 숙소는 그 도시에서 자동차 통행량이 가장 많은 비스마르크 광장 앞이었다. 짐을 푼 것은 퇴근 시간대인 오후 5~6시 무렵이었다. 호텔 방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시내 중심 지역이어서인지 교차로에서 많은 자동차가 이동하고 있었다. 트램까지 오고갔기 때문에 도로는 제법 복잡해 보였다.

그때 재미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들 옆에 자전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도로에 빨간 색이 칠해진 차로가 있었다. 자전거 전용도로였다. 우리나라와 달리 인도가 아니라 차도에 설치된 게 흥미로웠다. 파란 신호로 바뀌자 자전거들은 차례로 교차로를 지나갔다. 우회전하려는 자동차들은 자전거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 TV에서 ‘e-스포츠 세계 최강을 꿈꾸며’라는 프로그램을 보던 중 이색적인 장면이 나왔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럽의 프로게이머 중 한 명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었다. 그 뒤로는 자전거 한 대가 따라가고 있었다.

프로게이머가 탄 전동킥보드와 자전거는 인도가 아니라 차도로 달렸다. 차도 맨 바깥에 제법 널찍한 자전거 전용도로가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동킥보드가 없었을 때에는 자전거만 통행했지만 지금은 전동킥보드 통행도 허용되는 모양이었다.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TV를 보면서 우리나라 전동킥보드가 떠올랐다. 최근 개정된 규정에 따르면 전동킥보드는 인도에서 달릴 수 없고 차도로 내려가야 한다. 기본적인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도로 현실이다. 차도에서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려면 위험한 자동차 옆을 달려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난폭운전이 심한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라는 것은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전동킥보드는 앞으로 경제적으로 열악한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단거리 이동 수단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시내에서 오갈 때에는 전동킥보드만큼 편리하고 편안한 교통수단도 없다. 그렇다면 규제만 할 게 아니라 전동킥보드가 달릴 길을 열어줘야 한다. 유럽처럼 자전거·전동킥보드 전용도로를 차도에 설치하는 방안이다.

전동 킥보드를 살릴 방안일 뿐 아니라 대기오염을 줄이고 탄소 발생량을 저감하고 시내 교통체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전거 이용률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운전자들의 반발이 두렵다고? 도로에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엄격하게 규제해야 할 것은 전동킥보드가 아니라 난폭하고 무질서한 우리나라 교통문화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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