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묻다] ‘합리적 죗값’에 대한 새 기준점 찾는 논의 계속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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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국민 정서와 처벌의 괴리 - 전문가 4인 서면 인터뷰

부산대 로스쿨 원장 손태우 양형기준은 법리적 해석에 치중하기 때문에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질 수 있어

는 가정의 달을 맞아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을 만났다. 이들 유족은 모두 ‘소중한 가족의 죽음을 책임지는 이가 없거나, 그 처벌이 턱없이 미미하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법원의 ‘양형’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로스쿨 원장,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와 입법 관련 시민단체 대표에 이 같은 괴리감의 근원과 해법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전문가들은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법원이 국민 정서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재판이 여론에만 치우칠 경우 사법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며 “국민참여재판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국민 정서와 법리 해석 사이에서 새로운 기준점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법원의 국민정서 무시 안 되지만
재판이 여론에 치우쳐서도 안 돼
사법 체계 속 접점 찾는 노력 중요


-공분을 샀던 사건 판결마다 ‘국민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어떻게 평가하나?

이종배=법은 국민들 간의 약속이자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법적 판단도 주권자인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맞게 법 감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를 벗어난 판결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다. 양형과 법 감정의 괴리는 사법부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범죄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손태우=법 감정에 대한 국민적 여론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국민의 법 감정과 법관의 법리 해석에 입각한 판결의 괴리는 종종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되어 있다. 그때의 양심은 판사의 주관적 양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론을 청취하면서도 법에 따른 법리 해석을 거칠 수밖에 없다.

최인석=재판이라는 행위는 일의 순서상 마지막 단계에 있을 뿐이지, 그 사건이나 갈등을 마무리 짓기 위한 일이 아니다. 판사들은 자신들이 사건의 결론을 맺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무죄를 결정하는 것도 힘들지만 형량을 결정하는 데도 대부분 진땀을 뺀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엄벌에 처하면 피해자와 대중, 즉 다수의 신뢰는 얻겠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엄벌을 받아야하는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하는 개인의 권리가 무시되는 위험성도 있다.

이덕환=국민과 동떨어진 채 판결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할 때 일시적으로 분개해 형벌을 강화한다면, 그것은 근본적 해결 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는 행위만을 보지만, 판사는 사람으로 성장환경, 범죄 배경, 전과 등을 다각도로 보기 때문에 시각적 차이가 발생한다.



-법리와 법 감정, 양형의 적정성 사이 균형적 관계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는지?

손태우=대법원의 양형위원회가 2007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양형위원회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공감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은 대다수 법관이 따르고 있다. 그런데 그 기준은 범죄에 대한 기존 판례들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결국 국민 법 감정에 맞춘 것이라기보다 법리적 해석에 치중하는 다수 판사의 견해이기 때문에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질 수 있다.

최인석=우리나라 양형위원회는 탄력적으로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판사가 경우에 따라 탄력적으로 양형기준을 적용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는 주에 따라서 양형기준 그대로 판결해야 한다는 기속력이 있기 때문에 양형기준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아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에 정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판사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목이 쏠리는 사건 이외의 판결에는 법 감정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난이 크다, 어떻게 보나?

이종배=법원은 법적 판단이라는 형식 아래 판결을 한다지만, 같은 사건이더라도 양형이 들쭉날쭉한 것이 현실이다. 일관성 없는 선택적 양형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굳이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의 일반적인 법 감정을 충분히 반영한 판결이 필요하다.

손태우=판사 대부분은 법 적용을 이성적이고 보수적으로 한다. 따라서 국민적 공분 여론이 몰리는 이슈에 재판부가 여론을 고려하고, 그렇지 않은 사건은 양형이 낮은 수준에 머무른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양형을 하는 판사들은 국민적 여론을 반영할 수 있고, 살아있는 법 집행을 할 수 있는 판사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가해자들에게 합리적인 처벌이 내려지기 위해 추가로 마련돼야 할 대안이나 대책은?

이종배=국민의 법 감정과 눈높이를 확인할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입법 없이는 실질적 양형 기준 변경에 한계가 있는 만큼, 국회 내에 별도의 ‘양형특위’를 구성하여 밀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

이덕환= 양형의 경우 공판 검사, 즉 검찰의 역할이 중요한데 지금까지 검찰은 공소유지과 양형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법관은 중립적 위치에서 사건을 파악하기에 스스로 양형 자료를 찾고 반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수사 과정에서 검사가 양형에 관한 자료를 최대한 입수해 증거로 제출하고, 공판 과정에서도 적절한 양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손태우=‘양형정보시스템’을 도입하자는 학계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의 양형 기준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무척 힘들다. 왜 그렇게 선고했는지 명확히 밝히는 법관도 많다. 양형정보시스템은 양형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구조로 이용자가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이다. 그래야 최소한 양형 기준을 이해할 수 있고, 가중처벌되고 감형된 배경 등이 합리적이었는지 국민이 따져볼 수 있다.

정리=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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