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죽음과 상실을 추적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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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이지원 감독의 ‘아이들은 즐겁다’는 아픈 엄마와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는 아빠, 그리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 마냥 좋은 ‘다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영화의 제목처럼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번진다.

이지원 감독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아픈 엄마 바쁜 아빠와 사는 ‘다이’
폐건물 아지트서 아이들 세계 구축
상처받으며 성장하는 상징적 공간

엄마 요양병원행·아지트 철거 겹쳐
서로 다른 아이들 함께 로드 트립
‘차이’를 ‘놀이’로 극복하는 모습 그려


방과 후, 다이와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폐건물로 모여든다.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장난감 삼아 노는 아이들은 이곳을 ‘아지트’라고 부른다. 어른들은 모르는 세상,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아야 하는 비밀 장소.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그런데 영화는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지만, 아이들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건 어른들이다. 전학 온 다이를 반 친구들은 금세 친구로 받아들였지만, 학원을 다니지 않는 다이가 공부를 잘 하는 건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용인할 수 없는 문제다. 어른들은 다이가 커닝을 했다고 단정 짓고, 이는 아이들의 세계에도 균열을 가한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놀이가 중첩된 세계에서, 아이들은 상처받으며 성장한다.

영화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묵인하지 않는다. 특히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을 통해 상처받는 아이들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가슴 아프다. “주말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냐?”는 선생의 질문에 아이들은 하나같이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없는 다이는 거짓을 말한다. 이 거짓말은 곧 들통 나고 다이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가 없어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냄새 나는 옷을 혼자서 세탁하는 어른스러운 다이는 결국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아픈 엄마에게 내뱉고 만다.

엄마는 다이의 곁에서 오래 있어주고 싶지만 급작스레 병이 악화되면서 요양병원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아이들의 놀이공간인 아지트마저 철거되고 만다. 다이는 이제 엄마를 만날 수도, 아지트로도 갈 수 없는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영화의 카메라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키를 낮춘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감독의 의지다. 그런데 아이들의 시선에 맞춘 영화임에도 ‘죽음’을 함께 그리고 있어 의미심장하다. 다이의 엄마는 언제 죽을지 몰라 다이를 두렵게 만든다. 또한 다이의 이름이 죽음(die)과 연관됨을 상기한다면 이 영화는 아이의 삶에 죽음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죽음은 슬프지 않다.

다이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요양병원으로 가는 계획을 세우고, 평소 다이와 놀지 않던 친구들이 여행의 일원이 된다. 버스를 잘못 타서 길을 잃는 등 여행은 처음부터 삐걱거리지만 아이들은 모험이 즐겁기만 하다.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함께 여행길에 오를 수 있는 이유는 다르기 때문이다. 균질적인 세계를 욕망하는 기성세대에게는 차이는 마모되어야 할 것이지만, 아이들에겐 차이가 차별이 아니라 ‘관계’를 이루는 핵심이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병원과 아지트는 이어져 있다. 한쪽은 죽음이 예비 되어 있고, 한쪽은 언젠가는 사라질 상실의 공간이다. 그럼으로 이 영화는 죽음과 상실을 ‘추적’하는 아이들의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다. 죽음과 삶 사이, 상실과 만남 사이에 아이들은 ‘차이’를 공존 가능한 방식으로 ‘놀이’를 도입한다. 이 놀이에는 ‘실패’가 없다. 아이들은 지지 않는 놀이로 어른들의 세계를 비켜 나간다. 이것은 순수한 게 아니라, 다른 삶이다. 목적과 결과에 매몰되지 않는 관계를 어른들이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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